정봉스님 어린 시절, 동네분들에게 늘 들었던 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니는 뭐가 그리 좋아서 맨날 웃노."라는 말이었다.
벌써, 5년 넘게 스님밑에서 공부하면서... 스님께서 웃음을 잃으신 적은 참으로 보기 힘들었다. 돌아보면, 스님께서 몸이 많이 안좋으실 때도, 항상 웃으시기에 눈치 채지못한 일도 많았다.
저 번 달에 조그마한 공사를 하다가, 포크레인 기사가 스님 발을 포크레인 삽으로 내리치는 일이 생겼다. 옆에서 일을 도우던 우리는 너무나 놀라서, 허둥지둥 스님께 다가갔는데, 정작 스님께선 발을 이리저리 보시더니 오히려 놀랜 우리들을 위로하셨다. 병원에 엑스레이 찍으러 가시면서도, 놀라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포크레인 기사 아저씨를 위로하시면서, "부처님 공부하는 중은 다쳐도 크게 다치지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라며 미소를 지으셨다.
결국 병원에서 돌아오셔서도, 제일 먼저 포크레인 아저씨에게 전화를 거셔서 "뼈에 아무 이상 없다고 합니더. 제 말이 맞지예"하시면서 또다시 웃으시는 분이 바로 스님이시다.
병원에서 돌아오신 그 날 저녁,
낮 동안의 일을 정리하고 법당방에 모인 우리들에게 스님께서 질문을 던지셨다.
"반야심경에 보면 오온이 모두 공한 것을 알아서 모든 고통이 멸했다고 하는데, 공성을 깨달은 사람의 몸에 고통이 있겠나, 없겠나?"
우리들이 각자 답을 하니, 스님께서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예전에 스님께서 동굴에서 수행하실 때의 이야기였다.
한번은 동굴 앞의 감나무 잎을 조금 따려고 감나무에 발을 딛이셨다가, 비온 뒤 물기에젖은 나무에 미끄러져 곧바로 몇 십미터 높이의 낭떠러지로 떨어진 일이 있으셨다. 절벽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스님께서는 갈비뼈가 부러져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떨어진 채로 꼼짝도 못하고 그대로 누워서, 몇날 며칠을 계셨다고 한다.
"만일 그 때, 옆에 사람들이 있고, 내가 병원에 실려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오히려 더욱 고통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줄 사람도 없고, 정말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혼자서 그렇게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정말로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더라. 그리고 며칠을 밤낮으로 누워있으니 상처가 저절로 아물어서 기어서 동굴로 돌아왔다."
그러시면서, 당신 방 창문에 붙은 글귀를 손으로 가르키신다.
<과연 기댈 곳이 있는가? 있다면 죽어라>
"정말, 아무데도 기댈 곳이 없다면, 고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공성이다. 진정으로 공성을 깨친 사람은, 오직 중생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심뿐이어서, 그들의 고통만을 생각하는 삶을 살게 된다."
정말 그랬다. 당신께서는 단 한번도, 당신의 몸이 아프시다고 남걱정 끼치는 일이 없었다. 이래저래 일을 하시다가 손이 베이고 머리에 상처가 나서 피가 철철 흘러도, 그냥 가만히 지혈만 하시고는, "야, 내 업보가 하나 또 날아갔다. 억수로 속이 시원하다."고 하시면서 웃으시곤 하셨다.
이런 스님 밑에서 몇 년을 지내다 보니, 내 몸이 아프다고 해서, 갑자기 얼굴에 웃음을 잃거나 침울해지거나 새침해지는 내 자신을 볼 때마다,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항상 웃는 본래 행복한 그 마음이, 바로 우리가 부처님을 닮아가는 마음인데...이러저러한 이유로 그 행복한 마음을 지니지 못한다면, 어찌 내가 수행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가끔은 스님의 발끝이라도 따라잡고 싶어서, "힘드나?"라고 물으시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머금고 "아니요."라고 대답을 해본다. 언제쯤이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보살이 될 수 있을까...
<보살의 37 수행법>에는 이런 게송이 나온다.
"삶이 빈곤하여 언제나 사람들이 무시하고,
중병과 마장에 휩싸이더라도,
또다시 중생의 고통을 내가 받아,
좌절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나 또한, 위대하신 부처님과 보살님들, 그리고 현존하시는 스승님들의 그 크나크신 마음을 닮아서, 모든 중생들의 의지처가 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이 길을...당당하게 가고 싶다.
<까르마빠 존자님의 "사무량심" 음성파일> 클릭하세요!
이 파일은 깔마 욘땐 왜 소리거사님이 받아온 파일입니다.
샘젠탐제데와당 데외규당 댄빨귤찍
그것은 바로,
"니는 뭐가 그리 좋아서 맨날 웃노."라는 말이었다.
벌써, 5년 넘게 스님밑에서 공부하면서... 스님께서 웃음을 잃으신 적은 참으로 보기 힘들었다. 돌아보면, 스님께서 몸이 많이 안좋으실 때도, 항상 웃으시기에 눈치 채지못한 일도 많았다.
저 번 달에 조그마한 공사를 하다가, 포크레인 기사가 스님 발을 포크레인 삽으로 내리치는 일이 생겼다. 옆에서 일을 도우던 우리는 너무나 놀라서, 허둥지둥 스님께 다가갔는데, 정작 스님께선 발을 이리저리 보시더니 오히려 놀랜 우리들을 위로하셨다. 병원에 엑스레이 찍으러 가시면서도, 놀라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포크레인 기사 아저씨를 위로하시면서, "부처님 공부하는 중은 다쳐도 크게 다치지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라며 미소를 지으셨다.
결국 병원에서 돌아오셔서도, 제일 먼저 포크레인 아저씨에게 전화를 거셔서 "뼈에 아무 이상 없다고 합니더. 제 말이 맞지예"하시면서 또다시 웃으시는 분이 바로 스님이시다.
병원에서 돌아오신 그 날 저녁,
낮 동안의 일을 정리하고 법당방에 모인 우리들에게 스님께서 질문을 던지셨다.
"반야심경에 보면 오온이 모두 공한 것을 알아서 모든 고통이 멸했다고 하는데, 공성을 깨달은 사람의 몸에 고통이 있겠나, 없겠나?"
우리들이 각자 답을 하니, 스님께서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예전에 스님께서 동굴에서 수행하실 때의 이야기였다.
한번은 동굴 앞의 감나무 잎을 조금 따려고 감나무에 발을 딛이셨다가, 비온 뒤 물기에젖은 나무에 미끄러져 곧바로 몇 십미터 높이의 낭떠러지로 떨어진 일이 있으셨다. 절벽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스님께서는 갈비뼈가 부러져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떨어진 채로 꼼짝도 못하고 그대로 누워서, 몇날 며칠을 계셨다고 한다.
"만일 그 때, 옆에 사람들이 있고, 내가 병원에 실려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오히려 더욱 고통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줄 사람도 없고, 정말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혼자서 그렇게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정말로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더라. 그리고 며칠을 밤낮으로 누워있으니 상처가 저절로 아물어서 기어서 동굴로 돌아왔다."
그러시면서, 당신 방 창문에 붙은 글귀를 손으로 가르키신다.
<과연 기댈 곳이 있는가? 있다면 죽어라>
"정말, 아무데도 기댈 곳이 없다면, 고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공성이다. 진정으로 공성을 깨친 사람은, 오직 중생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심뿐이어서, 그들의 고통만을 생각하는 삶을 살게 된다."
정말 그랬다. 당신께서는 단 한번도, 당신의 몸이 아프시다고 남걱정 끼치는 일이 없었다. 이래저래 일을 하시다가 손이 베이고 머리에 상처가 나서 피가 철철 흘러도, 그냥 가만히 지혈만 하시고는, "야, 내 업보가 하나 또 날아갔다. 억수로 속이 시원하다."고 하시면서 웃으시곤 하셨다.
이런 스님 밑에서 몇 년을 지내다 보니, 내 몸이 아프다고 해서, 갑자기 얼굴에 웃음을 잃거나 침울해지거나 새침해지는 내 자신을 볼 때마다,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항상 웃는 본래 행복한 그 마음이, 바로 우리가 부처님을 닮아가는 마음인데...이러저러한 이유로 그 행복한 마음을 지니지 못한다면, 어찌 내가 수행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가끔은 스님의 발끝이라도 따라잡고 싶어서, "힘드나?"라고 물으시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머금고 "아니요."라고 대답을 해본다. 언제쯤이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보살이 될 수 있을까...
<보살의 37 수행법>에는 이런 게송이 나온다.
"삶이 빈곤하여 언제나 사람들이 무시하고,
중병과 마장에 휩싸이더라도,
또다시 중생의 고통을 내가 받아,
좌절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나 또한, 위대하신 부처님과 보살님들, 그리고 현존하시는 스승님들의 그 크나크신 마음을 닮아서, 모든 중생들의 의지처가 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이 길을...당당하게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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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젠탐제데와당 데외규당 댄빨귤찍
일체중생들이 행복과 행복의 因을 갖추기를 기원합니다.
둥앨당 둥앨기규당 댈왈귤찍
(일체중생들이) 고통과 고통의 因을 여의기를 기원합니다.
둥알 메베데와담빠당 미데왈귤찍
(일체중생들이) 고통이 없는 위 없는 행복을 여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네링착당니당 댈외 땅뇸첸보라 네빨귤찍
행복과 고통에 대한 집착을 여읜 대평등심(捨)에 머물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