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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이야기/채식과 자비심

양들은 침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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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하기 전에, 어느날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무심코 꺼내서 읽은 일이 있었다. 그 책은 아버지가 보시던 '능엄경'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어려운 책이어서, 부분만 읽었는데, 읽은 부분이 바로 계행에 대한 것이었다.

"청정한 비구와 보살들이 길을 다닐 적에 산 풀도 밟지 않거든 더구나 손으로 뽑는 것이겠느냐? 어찌 크게 자비로운 자가 중생의 피와 고기를 취하여 배부르게 먹으리요? 아난아! 동방의 비단이나 명주와 이 땅의 가죽 신이나 털옷과 우유나 그것으로 가공한 것 등을 먹거나 입지 아니하면 이러한 비구는 참답고 올바른 불자로서 묵은 빚을 갚고 삼계에 갇히지 않으리니..."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머리가 쭈뼛 서면서 무엇인가 마음에 깊이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난 그 날 이후로, 이제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가족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내가 무척이나 아끼던 세무신발을 신발장에 넣으면서, 다시는 가죽 제품을 사지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서양에는 생활에서 모든 동물성 제품과 식품을 반대하는 사람들(vegan)이 있다. 이들은 채식을 하면서도, 유제품이나 꿀등은 먹지 않고, 가죽이나 모, 실크등등도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인터넷에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동물성이 없는 제품만을 모아서 파는 사이트도 있다.

한국의 일부 스님들은 능엄경이 중국에서 지은 위경이라고 잘못알고 폄하하는데, 서양에는 능엄경의 도리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 아이러니다. 물론 서양에서 이런 움직임이 활성화되는 것은, 그네들의 자본주의가 너무나 잔혹해졌기때문이라 할 것이다. 더 많은 제품을 더 싸게 팔기 위하여 모든 것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가공되면서, 무언가가 그 과정에서 빠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가 모제품을 입을 때,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왔는지 사실 잘 모른다. 그저 양들은 털이 많으니까, 더울 때 좀 시원하게 깎아주고 우리는 그 대신 따뜻한 털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의 상상과 좀 많이 다르다. 세계 양모시장의 대부분을 호주와 뉴질랜드가 차지하고 있는데, 호주의 경우 양털을 깎을 때 털을 잘 벗겨내기 위해서 양의 엉덩이 부분을 엄청나게 도려낸다. 그리고 털이 모조리 깎인 양들은 화물선에 실려 중동과 북아프리카로 팔려간다. 그리고 그곳에 망신창이가 된 몸으로 겨우 살아서 도착하면 바로 도살당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제품, 가죽제품, 오리털, 실크, 모피등은 모두 이러한 잔인한 과정들을 거쳐 생산되는 것들이다. 모피의 경우 동물들이 죽으면 털이 빳빳하게 된다는 이유로, 그들이 살아있을 때 가죽을 벗긴다. --;
내가 무심코 구입하는 물건들이, 다른 존재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좀더 자비로운 방법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할 수 있지않을까.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구입했던 물건들... 앞으로 좀더 깨어있는 의식으로, 모든 존재의 행복을 위해서 후회없는 삶을 살도록 다시금 다짐을 해본다. 내 삶이 모든 존재의 행복과 해탈을 위한 삶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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