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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이야기(India)/인도 성지순례 2014

다겁생의 인연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오랫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드디어 시킴의 수도 갱톡에 도착했다.

인도와 다르게 청량하고 서늘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3년 무문관을 회향하고 인도 보드가야를 참배하려 했는데,

굳이 시킴까지 온 것은 어느 노보살님의 간절한 부탁때문이었다.

청정한 홍서원 도량에 약사여래불과 호법신중을 꼭 모시고 싶다는 간청으로

불상을 모시기 위해 이 먼 곳, 오래된 불교왕국...시킴까지 온 것이었다.

시킴은 외국인의 방문을 제한하는 곳이어서,

미리 허가증을 받아야 하고 체류기간도 한달로 제한되는 곳이다.

 

시킴을 방문하기 전에, 스님께 여러 선지식 사진을 보여드린 적이 있었는데,

스님께서 그 분들 중에 유독 한 분을 짚어서 어떤 분이냐고 물어보셨다.

스님께서 물어보신 분은 바로 닝마파의 도둡첸 린뽀체...

구루 린뽀체의 화신으로 알려지신 분이다.

이 인연으로 갱톡에서 그 분의 사원을 찾아가 친견을 하고,

결국 나중에 도둡첸 린뽀체가 주축이 되는 '롱첸 닝틱'의 '대원만전행'책을 받아보게 되고,

대원만전행을 쓴 뺄뛸 린뽀체의 '깨달은 분들의 마음 속 보물'도 번역하게 되니...

그 때 시킴에 갔던 것이 예사 인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4대 도둡첸 린뽀체의 모습

 

 

도둡첸 사원에 계신 스님들은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말을 건넸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 사람은 처음이라고 많이들 놀라면서 반겨주었다.

사람들이 어른 스님을 친견하려고 몇 시간 전부터 작은 방에 빼곡히 앉아있었는데,

시자 스님이 대중 속에 앉아계시는 스님을 보시더니 제일 앞 자리로 안내를 해주셨다.

도둡첸 린뽀체는 예상보다 많이 연로하신 모습이셨다.

티벳의 모든 대중친견이 그러하듯, 아무리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고 해도

정수리 한 번 만져주시고 빠른 시간에 친견이 끝나버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운이 많이 남는 친견이었다.

 

친견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나를 보러 먼 길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을 한 마디라도 해주고 보내는데..."

그래서 스님께선, 티벳이 아닌 한국땅에 태어나신 것이 아닐까...

 

갱톡에서 판매하는 불상들은 딱히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었기에,

우리는 일정을 서둘러 펠링으로 향하게 되었다.

갱톡에서 펠링으로 오는 도중... 유일한 촬영도구였던 핸드폰을 분실했기에,

아쉽게도 가야역에서 빠뜨나, 실리구리, 갱톡까지의 사진은 모두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다만, 현현스님의 반짝이는 지혜와 헌신적인 촬영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던 노트북을 이용하여 기가막힌 사진을 몇 장 남기게 된 것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다.

 

                      노트북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피사체를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감으로 찍어야 한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군분투하며 기록을 남겨준 현현스님의 모습~

 

*롱첸 닝틱계열의 여러 스승님들 중에, 스님께서 가장 마음에 들어하셨던 분은

 캅제 차트랄 상게 린뽀체이시다.

 예전에 보드가야를 갔을 때, 이 분의 가르침을 따라 채식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티벳 젊은이들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티벳의 여러 부파 중에 닝마파의 롱첸 닝틱계열이 유독 채식을 강조하는데,

차트랄 린뽀체 또한  반평생 채식과 매년 방생을 하신 것으로 유명하셨다.

이 분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히말라야 지역을 다니시면서,

동굴이나 숲속, 또는 작은 토굴이나 텐트에서 생활하며 수행하셨고,

신도들의 보시금은 모두 방생에 사용해서 수천마리의 동물과 새, 물고기들의 생명을 살렸다.

1913년에 태어나셔서, 작년(2016)에 104세의 나이로 열반에 드셨으니,

티벳스님들 중에 최고로 장수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부처님께 공양 올릴 수 있는 기도와 예경 중에

     모든 사람, 동물, 새, 물고기, 벌레들에게

     배려하고, 따뜻하고, 자비로와서 그들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절박한 위험에서 생명을 구해주려고 하거나,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것이

     살아있는 다른 생명들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실천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 캅제 차트랄 린뽀체 말씀

 

물고기를 방생하시는 모습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늘 텐트를 지고 머무는 곳 없이 다니셨다.

 

 

                                                           도둡첸 린뽀체와 함께

 

진실되게 보리심을 증장하는 수행자라면, 누구나 다른 생명을 자신의 몸과 같이 돌보게 되고,

결국 채식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나라, 어떤 전통이든지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는 늘 한 맛이라는 생각을

다시 또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