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지리산 홍서원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늘어나면서, 몇 년전부터 발우공양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뿔 발우'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발우를 쓰기도 했고, 강원을 졸업하고 온 스님 중엔 '와 발우'라고 사기로 된 발우나 나무로 만든 '목 발우'를 쓰는 스님도 있었다.
사실 각각의 발우는 모두 장단점이 있다.
멜라민으로 만든 뿔발우는 가볍고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이 장점이지만, 뜨거운 국을 담으면 들고 먹기 어렵다는 점과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와발우는 부처님께서 정하신 계율에 어긋나지 않는 장점이 있는 반면, 뜨거운 국을 담으면 뿔발우는 명함을 못내밀 정도로 아주 뜨거운 단점이 있다. 또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먹다 보면 배가 다 꺼진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굉장히 무거운 것이 최고의 단점이라 할 수 있다.
목발우는 가볍고, 뜨겁지 않는 것이 장점이긴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고 옻칠이 벗겨질 때마다 칠을 다시 해야하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부처님께서 여러가지상황을 고려하셔서 나무로 만든 발우는 금하셨다는 점.
정봉스님께선 아무래도 대중스님들의 발우가 통일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와발우로 바꾸시려고 대중의 의견을 물어보셨지만, 손목 근력이 약한 스님들의 열렬한 반대로 와발우는 없었던 일로 되어버렸다.
그러던 중, 하루는 대전에 계신 분을 병문안 가는 일이 생겼다. 병문안을 마치고 대전에 있는 한 채식식당에서 들깨 칼국수를 시키니, 스텐그릇에 들깨 칼국수가 담아져 나왔다. 으례히 뜨거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심스레 그릇을 잡았지만, 예상 밖에 국수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데, 그릇은 하나도 뜨겁지 않았다. 알고보니 평범해보이는 그 그릇은 바로 '이중 스텐 탕기' 였다!
뜻밖에 아이디어를 얻은 우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주방기구 도매점을 찾아갔다. 이중스텐탕기를 찾으니, 몇 가지 크기들이 있었고, 그릇을 차례대로 겹쳐보니 신기하게도 남부럽지 않는 발우세트가 구족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몇 달 동안 대중스님들 모두 스텐 발우를 쓰고 있지만, 쓰면 쓸수록 장점은 드러나고 단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뜨겁지도 않고, 반영구적이고, 계율에 어긋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스텐발우의 최고의 장점은 바로 '씻고 닦는데' 있다.
기존의 다른 발우들은 음식 찌꺼기가 잘 보이지 않아, 김이나 들깨,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먹을 때면, 마지막 헹군 물을 퇴수통에 비울 때 어려움을 겪곤 했다. 그런데 이 스텐발우는 '여실히' 드러나는 찌꺼기로 인해, 더욱 더 맑은 물을 퇴수통에 비울 수 있게 되었다.
"더러운 것은 자기가 다 먹고, 맑고 깨끗한 것만 세상에 내보낸다."는 스님의 가르침을 좀 더 잘 받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헹군 물을 다 비우고 발우수건으로 발우를 닦을 때, 스텐발우의 마지막 묘미가 드러나게 된다. 닦을 수록 빛나는 스텐발우는, 공양 뒤의 우리 마음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방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죽 했으면, 스님께서 "야, 우리 이러다가 홍서원 스님들은 다비하면, 다 광명 사리 나오겠다."고 농담을 하셨을까.
혹 어떤 불자들은 스텐발우가 점잖게 보이지 않는다고, 굳이 단점아닌 단점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수한 장점들을 고려해 볼때, 큰 절에서도 이젠 스텐발우로 바꾸는 것이 계율적으로나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긴, 오래된 전통 앞에 현대화나 대중포교라는 이름 아래 많은 것을 바꾸는 이 시대에... 번쩍이는 스텐발우가 오히려 '사이버 21세기'의 맛이 난다고...좋게 생각하면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 모든 스님들이 스텐발우를 사용하시길...여기 홍서원 스님들은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