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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지혜

발을 부처님 대하듯 하라

‘발을 부처님 대하듯 하라.’ 정봉스님께서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당신께서 30살에 불법을 만나신 이후, 가족 모두의 발을 하나하나, 따뜻한 물에 정성껏 씻어주셨다고 하신다. 그 때 식구들의 발을 씻어주면서, 마음속으로 모두가 불도에 귀의하기를 간절히 염하셨다고 하시면서 빙그레 웃으셨다.

평소에 스님께서 당신 발을 씻으실 때에도, 정말로 정성을 다해서 어루만져 주신다. 스님말씀처럼, 발은 우리 몸에서 가장 고생하면서도 대접을 못 받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늘 몸을 지탱하고 하루 종일 서고 걸으면서도, 햇볕한번, 바람한번 제대로 못 본채 고생을 하니 말이다.


                                   <봄을 전하는 지리산의 산수유꽃>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보면, “관음묘지력 능구세간고(觀音妙智力 能救世間苦)”이라는 말이 나온다. 스님께서 이 구절을 우리의 수행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보문품에 보면, ‘관음묘지력 능구세간고’ 라는 말이 나와. 이 말은 ‘관음의 묘한 지혜의 힘이 능히 세간의 고통을 구한다’라는 뜻인데...이 말의 뜻을 좀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어. 관음이라는 말은 관세음보살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소리를 잘 관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거든... 이근원통이라고 들어 봤재? 말세중생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방편이 이근원통 수행이라고 능엄경에도 나와.

우리가 소리를 잘 관하면, 실제 세간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어. 무량한 중생이란, 저 멀리 바깥에 있는 중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몸의 수십억의 세포들이 다 하나하나의 중생들이야. 우리 몸은 무량한 중생들로 이루어져 있어. 그래서 우리는 일단, 우리를 이루고 있는 이 무수한 중생들의 소리에 잘 귀를 기우려야 해.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괴롭다고 술을 마구 마시고, 담배를 피잖아. 몸에서는 자꾸 싫다고, 괴롭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그 아우성 소리를 자신의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으로 듣지 못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계속 술을 마시고 담배를 핀단 말이지.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 그 위장과 폐, 그런 중생들이 ‘오냐, 니가 내 말을 안 듣고 나를 괴롭혔재? 그럼 나는 이제 너와는 끝내야겠다.’라고 하면서, 전혀 다른 유전자 즉 암세포로 바뀌는 일이 생기는 거야.”



                                            <후원 뒤뜰에 핀 매화>


우리의 발을 부처님 대하듯이 하면, 즉 우리 몸의 소리를 잘 듣기 시작하면, 수많은 중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각하기 시작하면, 몸과 마음의 속도를 함께 하는 마음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교통체증으로 갑자기 차가 꽉 막혀서 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일이 생겼다고 해봐. 차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짜피 앞 차들이 꽉 밀려서 가지도 못하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다 말이지. 빨리 가고 싶은 그 생각에 마음은 조급해지고, 그러면 그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서는 안 좋은 독소물질이 배출되면서, 몸과 마음이 다 함께 망가지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스님께서는 몸과 마음이 함께 가는 것을 늘 강조하신다. 몸 먼저 가지 말고, 마음 먼저 가지도 말고, 두 가지가 하나가 되어 가는 것. 우리가 우리 몸과 마음의 소리를 잘 관하게 되면 어렵지 않게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 수 있다. 차 한 잔을 마실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참선을 할 때도... 몸과 마음이 함께 한다면, 큰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보통 수행하는 사람들은, 몸은 무시한 채 마음만을 보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이러한 수행이 결국 몸을 망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참선을 하면서 보통 선방에서 50분 좌선하고 10분 경행을 하잖아. 그 이유가 다 우리의 몸의 구조상, 50분이 가장 알맞은 시간이기 때문이야. 욕심이 앞서서, 오랜 시간 앉아있으면, 반드시 몸을 괴롭힌 만큼 대가를 치루게 되어있는 것을 사람들이 몰라. 인도의 라마나 마하리쉬도 오랜 시간 삼매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말년에 다리가 아파서 제대로 앉기 힘들어 하셨잖아. 우리나라의 큰 스님들 중에 용맹정진을 했던 스님들이 다 말년에는 장좌불와했던 만큼, 누워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몰라요. 그저 장좌불와 해서 대단하다라고 하지...00스님도 꼼짝 못하고 누워있었잖아. 에고가 강한 사람들일수록 용맹정진을 좋아해. 제대로 된 준비없이 소신공양한다고 손가락이나 태우고 그러면, 두고두고 고생한다. 소신 공양으로 유명한 어느 스님도 몸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서 양주를 많이 드셨잖아. 다 에고의 장난에 넘어간거야. 부처님께서 육년고행을 하시고 그것이 진정으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었으면, 다들 그 길을 따라오라고 하셨겠지. 거문고 줄 타듯 하라고 하신 말씀 꼭 기억해야 한다. 이 세상 어느 부모가 고생 무지하게 해서 돈 벌면, 자식보고 너도 나만큼 고생해봐라 하나? 하물며 부처님은 사생자부이신데, 아주 쉽게 그 깨달음의 길을 일러 놓으셨는데, 사람들이 에고 때문에 어리석어서 그것을 보질 못해요. 소중한 인간 몸 받아서 중생에게 잘 회향해야지”

참선할 때에, 무릎이 아프거나 다리가 저릴 때,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빨리 해결하려고 우리의 마음이 조급해지지는 않은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밀하고 세밀하게 살필수록, 우리는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중생의 소리와 함께, 부처의 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홍매화가 가득 핀 홍서원 공양간 모습>



“사람들은 타심통이 있다고 하면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듣는 수행을 제대로 하는 사람에게 타심통은 참 자연스러운 거야. 모든 사람들이 상대방을 볼 때, 그 사람을 진정으로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상대방이 이야기를 해도, 마음 속으로는 ‘저 말이 끝나면 이 말을 해야지’라고 생각하지, 상대방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관심이 없거든. 그래서 타심통이 안 생기는 거야.”

자신의 마음을 살펴, 세밀하고 세밀하게 살펴, 한 생각이 일어나는 그 순간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생각을 선한 마음, 중생을 이롭게 하는 마음으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점차 소리를 통해 소리없는 소리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전통사찰은 모두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으로 장엄되어 있다. 우리가 조금만 반짝이는 눈으로 살펴보면, 우리의 예불의식들, 종치고 북치고, 염불하는 그 모든 것이 다 이근원통수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문득 그 소리를 통해, 소리없음의 소리, 우리의 근원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모두가 우리의 삼독심 때문이라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한다.

한 손바닥으로 치는 소리, 구멍없는 젓대소리를 들으면,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탐진치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의 발이 외치는 소리부터 듣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백의관음무설설      백의관음은 설함없이 설하시고

남순동자불문문      남순동자는 들음없이 들으시네

병상녹양삼제하      병속의 푸른 버들 언제나 여름이고

암전취죽시방춘      바위 앞의 푸른 대나무 어디나 봄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