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6년 고행지, 바위산의 모습>
부처님께서 6년 고행하신 곳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에서 차로 1시간 떨어진 거리에 있다. 별다른 나무 한 그루가 없는 바위로 된 척박한 산이었다. 우리는 산등성이를 따라 산을 종주했었는데,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산 위에 까지 따라온 아이들>
인도의 어느 성지를 가던, 초입부터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바로 '걸인'들과 동네 아이들이다. 끝이 보이지 않게 긴 줄을 지어 앉아 있는 걸인들에게, 각국에서 온 불자들은 맨 첫사람부터 끝사람까지 사탕이나 과자, 동전 등을 보시하곤 한다.
그래도 이러한 인연으로 걸인들의 마음에 '부처님'이라는 이름을 가까이 하면, 늘 배고픔을 면하고 뭔가 좋은 것이 생긴다는 인식이 심어지니 얼마나 다행인가. 또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부처님의 성지를 '보시로 장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바위산에서 참선하고 계시는 정봉스님의 뒷모습>
우리 일행은 산 정상으로 올라가 예불을 하고 한 시간 가량 참선을 했다. 가족과 왕궁을 뒤로 한채, 하루에 좁쌀 한톨만 드시고 처절하게 수행하셨던 부처님...부처님께서 이곳에서의 6년 고행을 포기하시고 보드가야로 가던 중, 기력이 다해서 쓰러지셨는데, 수자타라는 처녀가 공양올린 우유죽을 드시고 다시 원기를 회복하셔서 도를 이루셨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드신 우유란, 자비심의 정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미소가 새끼소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얼마나 지극했으면 어미 몸의 피가 우유로 변했겠는가. 부처님께서 드셨다는 수자타의 우유죽은 "처녀라는 '순수한 마음'의 동기로 우유라는 '자비'의 정수를 통해서만이 우리가 도에 들 수있다는 상징을 담고 있다"고... 정봉스님께서 우리에게 간절하게 말씀해주셨다.
우리가 여기 둔게스와리에 와서 가장 안타까왔던 것은, 저 밑에 길게 늘어선 걸인들이 아니고, 바로 함께 왔던 스님들이었다. 오기 전 날부터 산 정상에 올라가서 먹게 될 간식거리로 달걀을 몇 판이나 삶아댄다고 바빴던 모양이다. 여기 부처님 성지까지 와서, 삶은 달걀을 톡톡 깨먹고 있는 스님들의 얼굴을 보니, 참 슬픈 연민심이 들었다. 이곳이 도대체 어떤 곳인데, 거룩한 마음으로 장엄을 하지는 못할 망정...
삶은 달걀은 여기 6년 고행지를 시작으로 해서, 나란다대학, 사르나트, 갠지스강을 순례할 때 마다 늘 우리를 따라 다녔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소위 남방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부 위빠사나 센타들은 다음의 공통점들이 있다.
첫째, 그 도량에서는 오신채와 고기를 먹는다.
둘째, 한국의 전통적인 예불의식을 부정하고 남방의 예불의식을 따른다.
셋째, 자기 마음의 탐진치는 살피지 않고, 몸에 나타나는 경계로서 수행의 진척을 판단한다.
현존하고 있는 남방 스님들의 계율생활을 살펴보면, 껍데기 계율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가 간혹 있다. 즉 계율의 밑바탕이 되는 정신은 사라지고 계목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율장에는 돈을 만지지 말라는 항목이 있는데, 일부 미얀마의 스님들은 신도들이 보시를 하면 손으로 받지 않고, 부채를 척 건넨다고 한다. 그 부채에는 주머니가 달려 있어서, 신도들이 돈을 그곳에 넣어 드린다고 한다. 또 대부분의 스님들은 돈을 만지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결제는 '카드'로 한다고 한다.
또한 오후에는 음식을 씹어먹지 말라는 조항이 있다고 해서, 오후에는 과일을 '갈아서' 마신다고 한다. --; 심지어 가장 심한 경우, 계율에 담배피지 말라는 조항이 없다고 당당하게 담배를 피운다고도 하니...
이번 사띠캠프를 주관했던 스님의 경우, 남방에서 다시 비구계를 받고, 남방 승복을 입고, 남방의 수행법을 가르치는 스님이었다. 예외 없이, 이 스님께서도 육식에 대해서 '올곧은(?) 견해'를 고수하는 스님이었다.
한 달 교육기간 동안 참가자들은 점심 한끼를 직접 해 먹었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통해 공수해 왔던 음식에는 김치, 고추장, 된장 뿐만이 아니라 마른 멸치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숙소는 공양을 제공해 주는 사찰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일반 여관으로 정하고(수많은 좋은 사찰을 두고 여관에서 생활하다니...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공부하는 시간을 빼앗겨 가면서도 음식을 해 먹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고기나 생선, 계란 뿐만이 아니라 오신채조차 입에 대지 않는 우리 세 명 탓에, 그 스님들의 원대했던 계획은 다소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처음에 오신채를 넣고 요리한 음식에는, 아예 손도 대지 않는 우리를 보고 불만이 있더니... 결국은 음식에는 오신채와 멸치를 넣지 않고, 반찬으로 따로 양파와 멸치를 찍어 먹는 방법으로 전환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밥을 해 먹었던 곳은 인도 스님의 조그만 수행처였는데, 우리에게 팔리어를 강의해 준 인도 스님도 함께 공양을 하시곤 했다. 때로는 인도스님 측에서 준비한 공양을 함께 식탁에 차리기도 했는데, 가끔은 고기요리가 올라오곤 했다.
당당하게 고기를 뜯고 있는 인도 스님과 남방스님 또 상좌 스님을 보고 있자니... 저 사람들이 말하는 '근본불교의 재건립'은 참으로 부처님의 뜻과는 요원한 것임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대승불교권에서는 '소승은 중도 아니다'고 하여, 테라바다 불교를 폄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되었는데, 인도에서 한 달 교육을 마칠 때가 되니, 옛어른들의 우려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번뇌를 삼세육추(세가지 미세한 번뇌와 여섯가지 거칠은 번뇌)로 나눌 때, '삼세는 보살만이 알 수 있는 경계'라는 말이 있다.
현재 남방의 위빠사나에서는 '알아차림-사띠'를 강조한다. 그러나 단순한 알아차림으로 자신의 수행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정한 알아차림은 끝없는 보살행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비록 자신의 거칠은 번뇌는 알아차릴 수 있다하더라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생각이 일체중생을 위한 지혜와 자비로 전환'되기 이전에는 모든 번뇌를 다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기맛, 멸치맛, 양파맛에 대한 엄연한 탐욕 앞에서,
부처님의 율장을 핑계삼아 자신을 합리화하는 스님들을 보면서...
부처님 당시처럼 걸식에 의존하지도 않으면서,
또한 스스로 공양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데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채식으로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스님들을 보면서...
얕은 지혜와 미천한 방편으로
스스로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부처님과 동등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자부하는 스님을 보면서...
정봉스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수자타의 우유공양의 의미처럼...
다시금
내가 하려는 수행의 동기가
스스로의 탐욕에 기인한 것인지,
순수하게 중생의 이로움을 향한 것인지
철저하게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부득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법을 잘못 이해하여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며, 또 이러한 지적을 하여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함이다. 원력을 세운 보살이 잘못된 것을 보고 침묵하는 것은 또한 불법에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 거룩하고 위대한 길을 가는데, 누군가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을 진정 나의 스승이라고 여길 것이다. 나는 언제든지 그러한 스승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