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가기 전에 스님들과 재가 신도분들에게 보시금을 모았었다. 그래서 남인도에서 북인도에 이르기까지, 방문하는 모든 티벳 사원에는 적어도 300달러씩 기부를 했다. 인도는 우리보다 물가가 싸기 때문에, 그리 큰 돈이 아닐지라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루는 따시종 근처의 '쉐라블링'이라는 사원에 가게 되었다. 까규파에 속하는 사원인데, 산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원의 규모는 생각보다 제법 컸다.
우리는 법당에 있는 엄청나게 큰 부처님(3층 높이)을 참배하고, 기도실에 있는 한 스님을 만난 뒤 사무실로 갔다. 이래저래 이 보시금을 모아왔다고 설명하고 보시금을 전달했는데, 받는 쪽의 반응이 영 심드렁하다. 사무실의 스님은 자신들의 린포체를 친견했냐고 묻더니, 친견실로 올라가라고 한다.
친견실에 올라가니, 입구에 있는 스님이 우리에게 여권번호 등 여러가지를 방명록에 기재하라고 한다. 시키는대로 기재를 하고 앉아 있으니, 티벳 노부부가 힘들게 올라온다. 노부부는 까닥과 공양금이 담긴 봉투를 들고 우리와 함께 기다리기 시작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시간이 계속 흘러도 들어오라는 말이 없다.
오히려 우리보다 늦게 온 티벳스님들은 벌써 몇 명이나 친견실에 들어갔다 나온다.
그렇게 아까운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다.
갑자기 스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가자, 이런 선지식은 친견할 필요가 없다. 선지식이 정말로 자비로운 사람이라면 아랫사람들이 이렇지는 않다. 그리고 사무실에 낸 보시금 돌려 받아라. 우리가 받아온 신도님들의 보시금을 그렇게 줘서야 되겠나?"
우리는 사무실로 내려가서, 상황을 설명하며 말했다.
"그 보시금은 한국의 신도님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보시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돈을 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그 돈을 돌려 받아가지고 와서 다른 비구니 사원에 기부 하였다.
우리가 한국에 돌아오니, 그 때 쉐라블링에 같이 갔었던 스님에게서 메일이 하나 왔다.
내용인 즉, 쉐라블링의 린포체가 탈세혐의로 인도정부의 감시를 받다가 얼마 전에 압수수색을 당했는데, 엄청난 양의 위조 여권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티벳민중의 어려움은 뒤로 한채, 여차하면 자신만 해외로 도피할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 때, 우리가 돌려받은 돈은 까규파의 비구니 사원으로 가게 되었다.
(델룩뽀의 비구니스님들과 함께)
델룩뽀의 까규파 비구니사원은 다람살라와 파탄콧 사이에 있다. 7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는데, 이 사원 근처에는 '띨로빠'가 수행하던 유명한 동굴이 있다.
이곳 사원에서 스님들을 교육시키기 시작한 것은 5, 6년 전이라고 한다.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의 수업이 있는데, 영어, 티벳어, 불교철학, 참선을 배운다고 한다. 가덴촐링과 더불어 제일 오래 된 사원이라 그런지 건물이 많이 낡아 보였다.
때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운 사원을 건축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워낙 다람살라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불사를 하기가 좀 어렵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쉐라블링에서 그 돈을 참 잘 받아 왔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인도에서 돌아온 뒤에, 서울에서 텐진 빠모스님과 텐진 돌마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런저런 법담을 나누다가, 티벳 불교내의 비구니 승단의 차별문제가 화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텐진빠모 스님은 그래도 한국은 다같이 '스님'이라는 호칭을 써서 참 좋다고 했다. 티벳의 경우, 비구는 '라마'라고 부르고 비구니는 '아니'라고 부르는데, '아니'라는 말 자체가 열등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유마경에 나오는 '천녀와 사리불' 이야기를 하면서, 불성자리에 어디 남자/여자가 있냐고 다들 성토했다.
그때, 우리가 쉐라블링에서 돈을 받아 델룩뽀에 전한 이야기를 하니, 텐진 빠모 스님과 텐진 돌마 스님이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웃으셨다.
비록 한국이 세계에서 비구니 승가가 존재하는 몇 안되는 나라 중에 하나이지만, '비구니 종주국'이라는 칭호에 걸맞으려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엔, 교육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