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리산에서

배추벌레 이야기

                          (앞에 보이는 빨간 점선구역이 벌레용 텃밭이다)


이제 김장철이다. 수행자로서 한 해 마음농사는 잘 되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여기 지리산의 조그만 텃밭에는 배추가 자라고 있다. 배추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벌레들이 얼마나 배추를 좋아하는지 알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벌레들에게 농약을 뿌리지는 못한다. 건강상 유기농 배추를 먹기위해서는 아니다. 벌레도 같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추잎을 반이라도 건지기 위해서는 살생 대신 다른 방법을 간구해야 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것은... 벌레들을 위해 따로 무배추를 심는 것이었다. 밭의 한쪽 구석에다, 벌레용 채소를 가꾸고, 그곳으로 벌레들을 살짝 들어서 옮기는 방법이다. 너무 작은 벌레는 옮기려고 손으로 집으면 몸에 상처가 나기 때문에, 제대로 커서 제법 통통해질 즈음, 아주 조심스럽게 들어서 옮겨주었다.


사실, 강제이주를 시키면서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먹을 것이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벌레가 선택한 일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보금자리를 강제로 이주시키면 누구나 반대한다.
그러나 차선책일지라도, 인간과 다른 생명들과의 공존을 모색해보고 싶었다. 우리 텃밭의 경우, 크기가 아담하고 또 경제적 이윤관계가 얽매이지 않아 가능했던 것 같다.

찬바람에 힘없이 떨어지는 벌들과 땅 속으로 숨어버린 개미들과 또 공양간 앞 밥그릇에서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를 볼 적마다, 새삼 겨울이 왔음을 느낀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계절이다. 내가 받는 혜택들을 부디 인간의 오만으로 누리지 않고, 일체중생의 해탈을 위해 회향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