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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풍성했던 추석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게스트하우스. 절집에서 버린 나무들을 모아다가 지었다.>

우리가 경주에서 지리산으로 돌아온 것은 3월 말 쯤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예전에 보조지눌스님께서 공부하셨던 불일암까지 매일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4월 초 어느 날, 늘 그렇듯이 불일암으로 산행을 갔는데, 불일평전에서 캐나다 두 젊은이를 만났다. 아직도 날씨가 제법 쌀쌀했는데, 두사람은 불일평전에서 야영을 했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끝에 결국 우리 토굴까지 같이 내려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알고보니, 두 사람 모두, 수행에 관심이 많았다. 수행을 위해 채식을 한다는 할든과 에밀리. 캐나다 토론토 출생으로, 할든의 경우 대학 학자금 융자를 갚기위해 진주에서 영어선생님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날, 반찬이라고는 고소간장과 된장국이 전부였지만, 참 맛있게들 먹었다. 식사가 끝난 후, 불교에 대해 , 참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다섯명이 모여앉아 함께 참선도 하였다.

언젠가는 불일암에 올라가니, 할든이 혼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든은 스님이 되고 싶다고, 출가에 대한 궁금한 것을 우리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 날, 할든에게 스님께서는 마음의 진정한 출가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다. 음욕심을 자비로 승화시키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라는 것과  본래 우리가 부처라는 큰 믿음이 수행의 올바른 첫걸음임을 말씀하셨다.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스님의 눈을 바라보던 할든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나에게 "가슴이 터진 것 같고, 머리가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고 그 때의 느낌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긴 추석연휴를 앞두고 다시 할든과 에밀리에게서 메일이 왔다. 추석 전날 이곳에 오고 싶다고... 할든은 곧 출국한다고 했다. 두 사람에게 화개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는데, 그냥 걸어서 올라왔다. 아주 큰 가방에 쌀과 여러가지 공양물을 둘러매고 결코 짧지 않은 길을,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은 언덕을 걸어왔던 것이다.
에밀리는 계약기간이 남아서 진주에서 계속 영어선생님을 하고, 할든은 중국, 동남아를 거쳐 대만으로 간다고 했다.
스님께서는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이 공부'라는 법문을 해주셨다. 바깥 세상의 여행은 영원하지 못한 것이지만,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은 영원한 것이고 또 돈 한푼도 들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자, 할든이 웃으면서 명심하겠다고 했다.
추석 전날 저녁 우리는 할든과 에밀리를 위해, 송편도 만들어 보고 윷놀이도 해보았다. 추석날 새벽 예불은 자율적으로 하라고 스님께서는 두 사람을 배려해 주셨다.

그러나 새벽 2시 40분이 되자, 할든은 조심스럽게 법당에 나타났다. 정성스럽게 절을 하며, 또 천수경도 드문드문 따라하며, 참선도 지극하게 했다. 그 날 새벽 할든은 예불에 참석한 공덕으로 귀한 법문을 들었다. '진리는 본래 여여하기에, 우리는 이 연기의 세상에서 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계율을 소중히 지키고, 보리심과 자비심을 내는 것은 바로 이 연기의 세상에서 세세생생 날 적마다 복락을 누리는 길이다.'라는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모습이 참 거룩해보였다.

오후에는 다른 손님들이 찾아와서 함께 공양을 하고 다 같이 칠불사에 가서, 통광스님께 인사드리고 운상선원에도 가보았다. 그리고 4시쯤 되어 터미날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현현스님에게 두손모아 합장하면서, 자신들이 먹은 최고의 음식이었다고 찬탄을 하였다. 현현스님이 할든에게 '다 같이 부처되는 길을 가자'고 하니, 할든은 '본래 부처라는 것을 늘 자각 하고 살겠다'고 하였다.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아쉬움이 접어지지 않았던 두사람. 우리가 동국대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만나지도 못했을 두 사람.  언어와 인종을 넘어 진리의 인연으로 엮여진 소중한 만남이었다. 할든이 여기 홍서원을, 마음을 치료하는 병원이라고 했던 것 만큼, 두 사람 다 마음에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의 씨앗을 받아갔다. 할든과 에밀리 모두, 우리를 만난 인연으로 불법의 인이 심어져, 늘 행복하고 족하고 넉넉한 삶을 살기를... 그리고 생사해탈하여 영원한 대자유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추석날 점심, 코스모스와 함께 풍요로웠던 공양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