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개인적으로 몸이 많이 아팠을 때, 불보살님께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한 적이 있다.
"과거생에 내가 지은 업으로 지금 이렇게 몸이 아픈 것이라면,
내 곁에 내가 목숨처럼 믿고 의지하는 선지식이 계시고,
인과법과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확실한 지금 이 때에,
내가 받을 업장을 미리미리 다 받아서,
몸의 병을 스승삼아 공부 잘하여, 중생을 이익되게 하여 지이다."
그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올해 5월 우리에게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그 날, 도량청소를 하다가 무심코 비온 뒤 자라난 버섯을 발견하였다. 우리 도량에는 늘 그때 그때 필요한 약초가 적당하게 나기 때문에, 독버섯이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스님, 여기 버섯 있어요!"
스님께서는 처음에는 '못먹는 버섯이다. 그냥 나둬라.' 하시더니, 내가 직접 따서 보여드리니, 먹어보자고 하셨다. 생긴것이 꼭 느타리 같은게, 결을 따라 찢으니 향긋한 송이 냄새가 났다. 그날, 저녁식사로 우리는 그 버섯을 볶아 남은 밥에 비벼먹었다.
밥 먹은지 몇분이 지나자, 현현스님이 다리에 힘이 풀린다면서,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독버섯에 해독작용이 있는 약초를 찾으려고 책을 뒤적거리다가 같은 증세를 느끼고 나 역시 구토를 하였다. 그때까지 스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녹차를 한잔 타서 우리에게 마시라고 건네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녹차를 조금 마셨는데도 상황이 호전되지 아니하고, 온 몸이 굳어지고 호흡에 장애가 오는 등, 증상이 더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여기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구례에 있는 병원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하였다. 병원까지 가는 동안, 정말로 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았다. 몸은 굳어가면서 감각이 없어지고, 목까지 뻣뻣해지면서 숨쉬기가 점차로 곤란해졌다. 그 때까지도 스님께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으셨는데, 우리를 쳐다보시면서 간절하게 말씀하셨다.
"지금이 공부하기 제일 좋은 때다. 철저히 깨어서 지켜봐라.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겪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겪어야 한다."
병원에 도착하자, 그 때부터 스님께서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셨다. 사실, 스님께서는 드신 것을 토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보다 독성이 더 깊게 퍼졌으나, 우리들 걱정 때문에 당신 몸은 잊으신 채 구례까지 운전을 하고 오신 것이다.
그러나 병원에 와서, 우리가 들은 말은 기대를 저버리게 했다.
"독버섯에는 해독약이 없습니다. 아마, 독이 몸에 퍼지면, 간이 제일 먼저 손상이 되고, 그러면 눈이 점점 안보이실 겁니다. 남원의료원에 가면 해독제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의사와 간호사는 세명 중에 제일 약해 보이는 나에게 링겔주사를 놓고, 위세척까지 했지만,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구례에서 30분을 더 가야하는 남원의료원까지 가기로 했다.
구급차를 타고 가기전 나는 링겔을 빼고 차에 탔다. 그러나 간호원은 끝까지 따라와서 구급차에 올라탄 나에게 새로운 링겔을 꽂아주었다.
구급차는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전속력으로 남원으로 달리기 사작했다. 그 의사 말대로 간에 충격이 크게 왔는지 시야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링겔주사의 성분이 무엇인지 내 몸은 불이 붙는 것 같아 참기가 힘들었다. 결국 다시 급하게 링겔 주사를 빼버리기고, 구급차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버섯을 땄던 나는 죄책감이 너무나 컸고, 두 스님에게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때,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어느 누구도,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걱정하는 마음이 없었다. 다들, 서로에 대한 걱정만이 가득해서, 상대방을 위로하고 걱정하며 토닥여주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있을때 우리들은 너무나 또렷이 깨어있으면서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했다. 몸의 감각이 사라지면서 몸의 존재를 잊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것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두려움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남원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태우고 왔던 구급차는 도망가다시피 가버리고, 미리 전화를 받았던 국립의료원의 간호사들이 들 것을 준비하고 마중을 나왔다. 그러나 구급차에서 미리 전화로 확인해본 결과, 남원 역시 해독제가 없었고, 별다른 대책 또한 없어보였다.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오히려 죽음을 재촉한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응급실에 들어가지도 않고, 병원 앞의 벤치에 앉아 간호사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냥, 집에 돌아갈래요. 조금만 앉아서 지켜보고 싶네요. 죄송하지만 물 좀 주실래요?"
간호원들은 기가 차는지, 물 몇 컵을 건네 주었다. 우리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우리가 믿음이 좀 더 견고했더라면, 이렇게 일들을 벌이지 않았을텐데... 그냥 우리 토굴에서 공부를 하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텐데...
그래서 우리는 남원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가서 죽음을 맞이하기로 결심을 했다. 몸은 이미 조절기능을 잃었고, 눈은 시려워서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참 홀가분했다. 이것이 죽음이구나... 이런 상황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떠올려진다고 하더만, 특정한 사람도, 특정한 사건도 떠올려지지가 않고, 그저 마음은 풍선처럼 가볍고 편안하기만 했다.
단지 불보살님께 이렇게 기도를 했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저희가 살아나면, 부처님 일만 하다가 가겠습니다.'
날이 어둑어둑 저물때가 되어서, 우리는 택시를 타고 다시 구례로 돌아오게 되었다. 구례에 있는 병원앞에서 우리가 타고 온 차를 타고 화개로 향했다. 사실, 내 몸 상태를 미루어 보건대, 스님이 다시 운전을 해서 화개로 간다는 것은 말그대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눈에 이상이 온 탓에 길이 세갈래, 네갈래로 보이고 방향감각 또한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있었다.
결국 스님께서는 초인적인 힘으로 우리를 태우고, 몇번 길을 헤매시다가 캄캄한 밤이 되어서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법당방에 와서 앉으니,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기는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버섯을 발견한 것도, 간호원들이 나에게 억지로 주사를 놓고 위세척을 한 것도 다 내가 받아야 할 업보였던 것이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가슴 깊숙히 참회가 일어났다. 스님께서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씀하셨다.
"그 버섯을 함께 먹은 것은, 우리가 같이 겪어야 할 공업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밤은 잠을 자서는 안된다. 큰 믿음을 가지고 이 법당 방에서 다 같이 참회기도정진을 하자."
그리고 스님께서는 밤새도록 불법을 설해주셨다. 특히 인과응보와 업보는 비켜가기 어렵다는 말씀과 함께.....우리는 2시 30분까지 법문을 들으면서 깨어있었다. 그리고 여느때와 같이 도량석을 할 시간이 되자, 몸을 추스려 도량석을 하고, 늘 하듯이 예불을 보았다.
날이 밝아오자, 죽음이 우리를 비켜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긴 하루였다.
버섯을 먹은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몇 겁이 흐른 듯 했다.
아침이 되자, 우리는 죽을 한 수저 뜨고, 윗토굴에 사는 스님, 그리고 그 스님과 함께 공부하러왔던 스님과 함께 예정되어 있던 불일폭포 산행까지 가게 되었다. 온 몸과 두 다리에 힘은 없었지만, 타인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그렇게 산행까지 갔던 것이다.
산 중턱에서 스님께서는 웃으시면서 그 두 스님께 이야기하셨다.
"사실, 우리 어제 밤에 용맹정진 했어요.
밤을 꼬박 새우고 죽음 앞에서 철저히 깨어있는 공부를 했거든요."
구급차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걱정할까봐, 핸드폰을 꺼내시다가도 몇 번을 망설이시던 스님 모습이 생각난다. 화개로 오는 차 안에서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아직 할 일이 남아서, 계속 중생세계에 머물러야 한다.
원력으로 사는 삶이 결코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지 않는다."
스님의 믿음대로,
우리는 결국 살아남아서,
이렇게 부처님 원력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그 독버섯을 먹은 공덕으로
많은 업보가 해결되고,
부처님에 대한 믿음은 더욱 견고해지고,
우리 세 스님의 마음은 더욱 하나가 되고,
죽음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으니...
역시 우리 도량에 나는 것은 약초 아닌 것이 없나 보다.
뒤에 스님께서는 이때의 일을 언급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그 때, 구급차를 타고 가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고, 상대방에 대해서 걱정했던 공덕으로 우리가 살아난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오로지 상대방을 위해서 자비심을 발현하는 것을 보고, 나는 너희들이 죽지않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자비심의 힘이 목숨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 참고로 독버섯에는 지금까지는 특별한 해독제가 없다고 합니다.
만일 독버섯을 드셨다면, 얼른 토하고 가지 삶은 물을 드시면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