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야기/정진 | Posted by 보리심의 승가 홍서원 보리심의 새싹 2006. 9. 11. 12:41

지네는 이불을 좋아해



그저께 밤 2시쯤 뭔가 따끔한 느낌이 들어서 잠을 깼다. 눈을 떠보니 작은 귀뚜라미 한마리가 벽에 붙어 있었다. '귀뚜라미가 물었나?' 하고 피식 웃었는데, 잠시 생각을 해보니 경험상 지네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이불을 들쳐봤더니, 한뼘이 넘는 빨강 다리를 넘실대는 지네가 기어나왔다. 놀란 지네는 불단뒤로 기어가는데... 순간 고민이 되었다.
             
               '내가 꼭 저 지네를 잡아서 방밖으로 내보내야 하나?'


한평도 안되는 방에서 도량석 목탁이 울릴 때까지 앉아있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임의로 내 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 지네에게 내 방이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아닌가? 내가 내 업보따라, 인연따라 물리는 것인데, 그냥 받아들이자.'

결국 지네는 지네대로 나는 나대로 살기로 하였다. 내친 김에 지네가 포도를 먹던 모습을 본 기억이 나서, 조그만 접시에 포도를 담아 방에 놔두었다. 내 공간까지 온 손님에게 최상의 안락함을 제공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젯밤은... 혹여나 지네가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왔다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나에게 놀랄까봐, 정신을 가다듬고 거의 부동의 자세로 잠을 취했다.

몇 년전에 은사스님 방 창문에 벌이 집을 지은 적이 있었다. 그 해 겨울, 스님은 벌통을 떼버리지 못하시고, 덧창문을 닫는 것을 포기하고 겨울을 나셨다. 보통 집같으면 그럴 수 도 있는 일이겠지만, 한칸 토굴에 여기저기서 찬바람이 들어와 살을 에는 그런 환경에서... 덧창문은 사실 어마어마한 방패막이 된다. 가만 있어도 코가 시린 방에서 덧창문을 포기하신 스님...

올해도 스님 방 창문에는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조금은 순하고 늘씬한 벌들이 망창에 의지해서 집을 지었다. 여름동안 스님께서는 망창에 꿀을 발라주시기도 하고, 그릇에 꿀을 담아 벌집근처에 매달아 놓으시기도 하셨다. 지금도 부지런히 애벌레를 위해 집을 짓는 벌들... 아마 올해도 스님께서는 덧창문을 포기하시지 싶다.

어제 저녁, 뒷간에 들어간 현현스님이, 추운 겨울을 앞두고 목숨걸고 달려드는 모기들이 배부르게 다 먹고 갈때까지 기다렸다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가을도, 저 익어가는 열매처럼 함께 영글어 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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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상 2006.09.13 06:18

    동체대비를 온 몸으로 실천하시는 모습을 뵙고 제 사는 모습을 생각하니 사실 참 부끄럽습니다.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강심 2006.09.13 12:11

    동영상 너무^^* 좋네요....ㅎㅎ

    제가 사는 오피스텔은 한달에 한번 강한 소독제를 써서 벌레들의 씨를 말리는 것 같아요. 정말 무서운 표현이지만요....
    이사온지 3년 정도 된것 같은데 벌레는 여름에 음식물에 잠깐 찾아드는 초파리 밖엔 보질 못했네요.
    관리비에 한달 소독비가 5000원씩 꼬박 청구되어 나오구요. 제가 벌레들 죽이는 비용을 부담한다고 생각하니....ㅜㅜ
    손발톱 깎은 것을 밖에 나갈때 공원같은데 있는 개미한테 주려고 봉투에 넣어놨다가
    무심코 열어본 동생의 지탄을 받았어요. 개미먹이로 좋다고 여기서 배운대로 가르쳐 줬더니 동생들도 거기에다 모으고 있어요.

    그러나!!
    아직 한번도 밖에다 뿌리질 못했어요.
    생각과 행동의 간극.
    이 간극이 요즘 저의 모든 면에서의 숙제 입니다.

    EM도 주문해서 왔는데 아직 사용을 못했어요..

    행!
    내일안에 꼭 먹이 주고 쌀뜨물 발효액을 만들겠습니다.
    이곳을 빌어 약속합니다. 꽝꽝꽝!

    •  댓글주소  수정/삭제 BlogIcon 보리심의 새싹 2006.09.13 18:57

      생기발랄 강심이!!!빨리 빨리....
      개미가 이제 겨울 동면준비끝나가요...
      곧 땅밑으로 사라져요....얼른....
      즉설주왈....생각과 행동이 동시에!!!

  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종승 2006.09.13 16:26

    스님 참 대단하십니다.
    자비의 진면목이 어떤 것인지 알것 같습니다.
    벌을 위해 덧창문을 만들지 않은 은사 스님이나 지네을 위해 포도 껍질을 보시하신 스님이나 대단합니다.
    갑자기 부끄러워집니다.

    •  댓글주소  수정/삭제 BlogIcon 보리심의 새싹 2006.09.13 19:02

      안녕하세요.^^
      저희들도 부끄럽습니다.
      부처님의 자비심을 헤아려 본다면,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위대한 부처님의 발끝이라도 닮아 보려고.....

  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지 2006.09.13 17:48

    스님 죄송합니다. 너무 오래뵙지 못해서 부끄럽습니다 스님의
    언제나 여여 하신 모습이 눈에 훤 합니다 .합장 삼배 올리겠습니다
    추운 겨울에 뭇생명의 먹이를 주신 자비의 마음 거룩 하십니다.
    처음 컴퓨터를 만지니 두서가 없습니다. 앞으로 컴퓨터를 사서 블로그에 자주 들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댓글주소  수정/삭제 BlogIcon 보리심의 새싹 2006.09.13 19:07

      ㅎㅎㅎ 위대하신 대지스님,
      나가 시방 그냥 모른체 하고 살라꼬 했는디.......
      이 홈피에 들어와서 댓글을 쓰시다니...
      인사를 안하면 서운해 하시겠지요? 미안....
      그간 잘 계신것 같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정열적이신 스님,
      오로지 바른 정지견으로 곧바로 나아가시길....

  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가지 2007.01.02 15:49

    방안에서, 이불안에서, 지네를 집게로 잡아서 밖으로 보내면서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말고 부처님법 만나서 다음에는 사람으로 태어나그라 . . . 하면서 ... 남편과 나는 위안아닌 만족으로 . . . 휴우 . . . 스님의 글을 읽다보니 맞아 ! 이방안이 어찌 나만의 공간이 될수 있으며, 내가 주인이라고 쫓아낼수 있다 말인가 !
    스님 ! 계신곳을 제가 찿아갈수 있을까요?

    •  댓글주소  수정/삭제 BlogIcon 시루 2007.01.02 17:05

      스님들께서는 지금 인도에 계셔서 2월 말이나 되야 돌아오실 듯 합니다. 2월 23일 이후로 다시 연락 남겨 주시면 스님들을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