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매의 인연으로 누군가 울라이 숙소로 오게 되면,
효혜는 오늘 오게 될 사람이 어떤 인연으로 만난 사람인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미리 이야기해 주곤 했다.
효혜는 그날 오게 될 호군문(胡君文) 보살님에 대해, Logic(논리) 보살이라고 설명했다.
세 자매가 가끔 군문 보살님과 불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었는데,
너무 깊고 세밀하게 따지고 들어서 대화가 무척 어렵고 힘들었다고 했다.
약속된 시간에 나타난 군문 보살님은...영어로 말해도 되냐고 물어보더니 유창한 영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박사학위도 받은 전문 인력이었다.
법고산 사찰에서 외국인 방문객이 있을 때, 법문을 통역하는 자원봉사도 종종 한다고 했다.
보통 그동안에 오셨던 분들은, 언어적 한계가 있기도 하고 해서,
꼭 질문할 말만 골라서 간단히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군문 보살님은 원래 성격이 논리적인 것을 좋아해서, 용수보살의 "중관"을 재밌게 공부하는 중이었고,
더구나 영어도 유창해서...
스님 법문 하나 하나마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의심가는 일은 하나 하나 질문하기 시작했다.
스님께선 2시간이 넘도록 계속 보살님 장단에 맞춰 대답을 해주시다가,
보살님이 스님의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을 때, 이런 법문을 해주셨다.
"보살님께서 여기에 반은 호기심에서 왔다고 하니, 말을 하지말고 귀담아 들어보세요.
첫 판부터 듣기만 했으면 좋았을텐데...
미안하지만, 나는 가르치는게 없어요.
왜냐하면 부처님은 단 한번도 가르친 적이 없어요. 이해하시겠나요?
"가르치지 않은 것"을 배우세요.
배우면 배울수록 번뇌망상은 들끓고 삶은 어려워집니다.
이 위대한 가르침은 내려놓고 들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메모리 카드를 다 내버리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자기 아는 것을 다 내려놔야 배울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전통사찰 입구에 들어서면 일주문이 있어요.
여기에는 모두 동일하게 "불이문(不二門)"이라고 쓰여있고,
한 쪽 기둥에는 "입차문내 막존지해(入此門內 莫存知解)"라고 쓰여있습니다.
무상, 고, 무아를 해결하려면, 깨달음의 자리, 영원하고 참된 행복과 영원한 자유와 사랑을 차지하려면,
이 문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알음알이를 내려놓고 들어가라...
한국의 수천 수만의 전통사찰 입구에는 꼭 이 말이 있습니다.
망식을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파식망상필부득(叵息妄想必不得).
우리가 생각으로 분별로 헤아리는 것은 모두 다 망식입니다.
헤아려서 이 진리를 구할 수 없음을 이해해야합니다.
진짜로 영원히 행복해지고 영원히 자유를 누리려면,
지금, 기존의 고정된 틀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않고는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습니다.
본인도 알고 있잖아요. 거의 한계점에 도달했어요.
배우고 싶으면 아는 소리를 하지말고 들어야 합니다.
나는 문제가 해결됐는데, 본인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잖아요."
그러자 군문 보살님이 잠시 가만히 있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전 이번 생에 깨닫지 못해도 괜찮아요. 저에게는 수행의 목적이 있으니까...
이번 생이 아니라면 다음 생에도 나아가면 되니까요..."
스님께서는 보살님 수행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보살님은 "이분법을 초월하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고 했다. 스님은 이 말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분법의 초월요? 바보같은 목적이예요.
이 컵도 이분법을 초월해있어요!
허공도 이분법을 초월해있어요!
물도 이분법을 초월해있어요!
인식하는 존재만 이분법을 초월해있지 못해요!
돌이 되고 싶나요? 어리석은 목적을 갖지 마세요.
불교를 잘못 배우셨어요.
부처님과 같은 목적을 가져야 해요.
붓다의 목적을 가져야 해결이 납니다.
부처가 되려면 붓다와 같은 목적이어야 합니다."
군문 보살님은 스님의 말씀에 이렇게 말했다.
"사실, 단기간 안거를 하면서, 저는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제 마음에 일어나는 것에 대해 분명히 아는 것,
마음을 따라가지 않고 분명히 아는 것이 제 수행의 목적이라고 했어요.
영원한 목적은 아니지만...제게 깨달음이란...
제 스스로가 한 발 한 발 체험하지 않는 이상, 남들 하는대로 따라가지 않을 거예요.
물론, 이런 친견의 기회를 소중히 여겨요.
제 스스로가 명확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대화를 통해서 어떤 부분이 명확하지 않은지 확인해요..."
스님께선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대만 와서 처음 바보를 만났어요. 결혼했어요?"
군문 보살님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스님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이번 생에 결혼한 경험으로 결혼했나요?
내일이 오는데 내일을 미리 경험하고 내일을 맞이하나요?
단 한번도 똑같은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똑같은 것을 경험할 수 있나요? 끝없이 새로운 것인데...
경험된 것만 논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모든 경험은 새로운 경험이예요. 똑같은 경험은 없어요.
내가 계속 웃고 있는 이유를 아나요?
자기라고 할말한 실체는 없는데, 보살님은 계속 자기라고 떠들고 있어요.
존재하지도 않는데,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계속 떠드니까요.
허깨비가 지금 떠들고 있는데도 본인은 모르고 있어요.
환이 떠드는데도 자기는 실재한다고 생각해요. 빨리 알아차리세요.
Who are you?
무아를 이해하세요?
자기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데,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데도, 지금 계속 주장하고 있어요.
얼마나 어리석어요.
웃는 자가 누구입니까?
떠들지 말고 참된 자유를 찾으세요. 세월이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자유를 얻지 못했으면서 언제까지 아는 소리 하실겁니까?
행복하지 못하면서 언제까지 행복한 척 하실 겁니까?
진실해지세요. 진실만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오직 진실한 자만이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오직 진실한 자만이 해탈할 수 있습니다.
거짓된 자아의식에 속지마세요. 에고의 장난에 놀아나지 마세요.
진실해지세요.
참된 자기로 돌아오세요.
거짓된 삶을 살지 마세요.
부처님은 모든 거짓을 다 내려놓으셨어요.
참된 자기가 아닌 것은 다 내려놓으셨어요. 그래서 자유를 얻으셨어요.
진실만을 가지고 계세요. 거짓으로 치장하고 살지 마세요.
한 생각 돌이키면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왜 돌이키지 않나요?
지금 당장에 행복과 자유가 있는데도 왜 외면하나요?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를 얻으려면 지금 당장 얻으세요.
행복을 얻으려면 지금 당장에 얻으세요.
진실해지려면 지금 당장 진실해지세요.
그래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행복하지 않고 슬프게 보여요.
용기있는 자가 이 길을 갑니다.
쉬세요... 쉬어야 합니다...그러면 얻을 수 있어요.
나도 쉬어서 얻었어요. 부처님도 그러셨어요. 방하착하세요...
짐을 얹고 다니지 마세요. 어디에도 구속받지 마세요. 왜 마음의 구속을 받고 사나요?"
스님의 간절하신 법문에 보살님은 말문을 닫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스님께서 보살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속에서 내가 울고 있어요...
보살님은 겉으로 울어도 난 속으로 울고 있어요...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찾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반드시 길이 있으니까 귀를 기울이세요.
길을 안내해주시는 분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 안내해주셨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다.
잘난 것 내려놓으세요. 그래야 편안해집니다.
나는 깨달음도 내려놨어요.
그거 안내려놨으면 한국에서 큰스님하고 있을 겁니다. 인가받고도 30년을 숨겼어요.
자유인이 가장 좋습니다. 잘나면 피곤합니다. 많은 사람이 관심가져주면 그만큼 힘듭니다.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세요.
진짜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면 무상, 고, 무아가 해결됩니다.
이 세상에는 영리한 사람이 성공하지만, 진리의 세계는 어리석은 사람이 성공합니다.
편안하게 마음을 쉬고, 하늘을 한번 보세요...
하늘보다 위대한 마음이 보살님 마음입니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법문... 보살님은 떠나기 전에 이렇게 말을 했다.
"제가 눈물을 흘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갑자기...너무도 명확하게...제 자신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자리에 불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무스님은 정말 마법과 같이 느껴져요. 발보리심은 정말 제 문제였거든요...
안거 때, 사람들과 함께 발원문을 읽으면, 그 부분이 나오면 조그마한 소리로 말하거나 아니면 아예 침묵하곤 했습니다...
그건 정말 버거운 숙제였거든요. 끝없는 고통, 윤회... 어떻게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너무 무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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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들이 한국으로 떠나는 마지막날,
군문 보살님은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채식 베이커리에서
우유, 계란 없이 만든 각종 케익과 빵을 사들고 다시 숙소로 왔다.
그리고 스님들을 공항까지 모셔다 드리고 싶어서, 큰 차를 몰고 왔다고 했다.
사실, 그날 스님께선 여러사람 번거롭게 하길 원치 않으셨기에,
미리 택시로 공항까지 간다고 세 자매에게 말씀해두셨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출발시간이 가까와 오자... 회사일 바쁠까봐 오지말라고 했던 준홍거사도 다른 볼 일이 있는 척 등장했고, ^^
진선생님은 공항근처에 노모님이 사신다고...^^;
그날따라 노모님을 뵈러 갈 일이 있다고...공항에 일부러 가려고 하는게 아니라며 등장하셨다.
결국 공항으로 갈 차가 세 대나 되자, 스님께선 고민 끝에 진선생님 차에 타시기로 하셨다.
그런데, 진선생님 차가 주차 되어있는 곳으로 다정히 내려가시던 두 분께서, 갑자기 다시 올라오셨다.
알고보니, 군문보살님의 차가 공항까지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진선생님께서,
자신의 차보다 보살님의 차가 더 편안하고 좋은 차라고... 극구 보살님 차에 타시라고 하신 것이었다.
결국, 현현스님 혼자 다른 차에 타고, 세 차가 모두 공항으로 향하게 되었다.
군문보살님은 미처 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공항까지 가는 길에 스님께 여쭈어보았고,
스님께선 또 정성을 다해 법문을 해주시게 되었다.
군문보살님이 법문을 듣고 환희심을 내자, 스님께선 공항에 도착해 있으신 진선생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 양보해 주신 덕분에, 군문 보살님이 좋은 법문을 들었습니다. 모두 진선생님의 공덕입니다."
그리고 공항에선...눈물의 작별인사가 이어졌다.
출국장으로 올라가는 에스칼레이터 앞에서, 서로가 너무나 안타깝게 작별인사를 하자,
근처에 있던 공항관계자가,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출국장 앞까지 가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결국 다 같이 출국장 바로 앞까지 와서 ,
스님들이 모두 출국장 안으로 들어서서 시야에 사라지는 순간까지...
손을 흔들고 또 흔들던 대만 신도분들...
그 신심과 선한 마음들이 항상하고 더욱 증장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스승님과 진선생님>
<군문보살님>
끝까지 사진을 찍어주고, 또 이메일로 보내준 준홍 거사님께 감사의 말씀전합니다~
Thanks 鈞鴻 for his wonderful 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