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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이야기 /2014년

나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는 환영이다

대만 진선생님의 도예 작업실에 다녀오는 길에,

늦은 저녁시간 막내 효유의 단짝 친구 미연(美娟)보살님을 만나러 갔다.

사실 이 친구는 자제공덕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의사들이 좀 더 환자들을 자비심으로 잘 돌볼 수 있도록

의사들을 여러가지로 지원해주는 비서역할을 하고 있었다.

퇴근 후 늦은 시간에 Wulai  집으로 오라고 하기엔 너무 힘들어할 것 같아서,

우리가 밤 늦게 들어가더라도 병원근처 시내에서 만나자고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늦은 밤 시내 한복판의 조그만 패스트푸드점, 작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미연 보살님은 누구나 그저 얼굴만 봐도 착한 사람임을 바로 알 수 있는... 그런 착한 친구였다.

삶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너무 착한 게 탈이라고...

어떤 상황에 부딪혀도 그저 자신이 더 잘하지 못하는 것을 탓하는 것이... 탈이라면 탈이였다.

자재병원에는 이 친구처럼 의사들을 지원해주는 비서들이 많이 있는데, 이 비서를 총괄하는 매니저가 있다.

모든 조직이 그러하듯, 매니저는 상부에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과도한 충성을 하기 마련이고,

그 밑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은 그 과도한 충성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 병원도 마찬가지의 상황... 이 친구는 자기 자신은 참을 수 있어도,

다른 동료들이 매니저로 인해 힘들어하니, 본인도 같이 힘든 상황이었다.

 

종교집단이 다른 조직과 다른 면이 또 한가지 있다면,

그곳에 몸 담고 일하는 사람들은, 불교적인 이념인  '선함' 자비로움' '보시' '인욕' '하심' '지족' 등을 이미 배웠기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 갈등 자체도 힘든데, 거기에 죄책감마저 들게 된 다는 것이다.

 

이 친구와 동료들도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니저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자제공덕회 큰 스님께서 모든 상황에서 지족(知足)하라고 하셨는데...'하면서,

불만을 갖는 스스로를 탓하면서 더욱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님께선 종이를 꺼내, 종이에다 그 매니저의 얼굴을 그려보라고 했다.

스님께서 시키신대로 얼굴을 그리자, 스님께서 자상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여기에 매니저도 없고, 이건 그림이니까...이 그림이 매니저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속상했던 일, 이런 점을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점을 좀 말해보세요.

  자~그림 속의 매니저에게 '지금부터 한 마디도 대꾸하지 말고 내 말을 잘 들으세요'라고 하고 시작해보세요" 

 

잠시 망설이던 순진하고 순수한 효유 친구는, 정말로 진지하게 그림에다 대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뒤, 스님께선 금강경의 사구게 중에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미연보살님은 바로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스님께서 바로 물으셨다.

 

"부처님께서 모든 것이 환과 같다고 하셨는데, 왜 매니저는 환으로 보지 못하나요?"

 

"왜냐면...저희들에게 영향을 주잖아요...감정도 일어나고..."

 

"그것은 매니저를 완벽하게 환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이 그림 속에 있는 매니저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잖아요. 한 마디 대꾸도 못하잖아요.

 부처님께서 이 세상이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꿈과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째서 부처님의 말씀은 믿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에 사로잡혀서 고통을 받고 있나요?"

 

"경전의 가르침을 들은 적은 있어도, 한 번도 그것을 일상에 적용해 볼 생각은 못 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과학자들이 이 현상계를 공(空)으로 볼  수 있는 특수 렌즈를 발명할 거예요.

 그 특수 렌즈를 꼭 끼어야만 그때서야 이 현상계가 비어있임을 받아들이겠어요?

 어떤 아이가 태어났는데, 의사가 아무도 몰래 아이 눈에 빨간 색 렌즈를  씌웠어요.

 아이가 그것도 모르고 자라서 20살이 되었는데, 

 그 청년에게 하늘이 무슨 색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우리는 모두 오랜 세월동안 무지무명의 업보의 안경을 끼고 있기 때문에,

 현상계가 이렇게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보는 거예요.

부처님께 이 세상은 어떻게 보이겠어요? 이 컵을 어떻게 보시겠어요?"

 

"컵이요..."

 

"틀렸어요. 부처님은 이 컵을 공(비어있음)으로 보세요. 이 현상계에 절대로 속지 않으세요."

 

스님께선 그 보살님에게 '다시는 속지 않는다'고 종이에 쓰라고 말씀하셨다.

보살님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법문에 어리둥절 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가벼워진 듯,

병원에 돌아가면 고통받는 동료들에게 이 법문을 나눠주고 싶다고 하였다.

 

며칠 동안의 연이은 법문으로 많이 힘드실텐데도,

병원 출장일로 오늘밖에 시간이 없다는 미연보살님을 위해, 밤늦게까지 법문을 해주신 스님...

취침 시간을 넘긴 늦은 밤, 몸은 힘들었어도 돌아오는 우리의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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