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와 석탄은 동일한 탄소로 만들어졌지만, 그 둘은 엄연히 다르다. 다이아몬드는 '결정화된, 부서지지않는, 영원한 어떤 것'임에 비해, 석탄은 '태워지는, 쉽게 부수어지는, 타버리는 어떤 것'이다. 우리는 수행을 할 때, 우리 마음의 다이아몬드와 석탄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리 마음의 다이아몬드는 바로 영원한 자비, 석탄은 다름아닌 애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와 석탄이 동일한 원소로 이루어졌듯이, 이 자비와 애욕도 또한 동떨어진 것이 아니어서, 우리의 뒤바뀐 착각만 없어지면, 애욕이 바로 자비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자비와 애욕은 어떻게 다른가?
자비란, 한 대상에 한정되지 않는 것, 조건없는 것, 주어도 주어도 메마르지 않는 것, 모든 것이 이해되는 것, 몸과 마음이 풍족해지는 어떤 것이다.
애욕이란, 특정 대상에만 한정되는 것, 조건이 따르는 것, 주는 만큼 받아야 하는 것, 질투와 애증를 동반하는 것,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는 어떤 것이다.
보통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나 두사람이 함께 있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 상대방 때문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행복이 찾아오는 비밀은 바로, 온갖 생각이 들끓던 나의 마음이 잠시 쉼으로써, 내가 내 본래의 마음자리와 잠시 하나가 되기 때문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행복감이 상대방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그 사람에게 집착하여, 나의 소유로 만들려고 한다.
수행자의 행복은 어떤 외부환경이나, 특정 사람에게 의지한 행복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본래 마음자리에 늘 안주함으로써 찾아오는 행복감으로, 끊임없이 샘솟는 옹달샘과 같이 다른 존재에게 무한정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런 행복이다.
따라서 독신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은, 명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행복의 근원을 발견하면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은 바로 자비의 몸짓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살면서 결혼한 사람 또한, 자신의 사랑을 한 사람이나 가족에게만 한정짓지 않고 모든 존재계로 확장시키는 마음을 가꾸어가면, 애욕을 자비로 승화할 수 있게 된다.
수많은 수행의 길중에 가장 보편적면서도 쉬운 길이 바로 사랑의 길이라고... 은사스님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착각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즉 사랑과 행복을 느낄 때, 그것이 일어나는 근원을 바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영원한 행복의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과 행복을 느낄 때마다, 그것이 바깥의 어떤 사람이나 환경때문이라고 착각한다면, 우리는 애욕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