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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로또 당첨은 평생의 복을 일시불로 당겨받는 것일뿐(한국경제신문)

지리산 스님들의 못 말리는 수행 이야기┃천진·현현 스님 지음┃불광출판사┃256쪽┃1만2000원

지리산 맥전마을 홍서원에서 수행중인 현현(왼쪽)·천진스님. /불광출판사 제공
지리산 화개골에 있는 맥전마을은 아홉 가구 가운데 네 집이 스님들의 수행처다. 그 중의 한 곳,홍서원(弘誓院)에는 젊은 비구니 스님 둘과 이들의 스승인 비구 정봉 스님이 산다. 안락한 삶을 스스로 내던지고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는 이들은 한솥밥은 먹어도 한 지붕에서 살지는 않는다. 한 두 평 남짓한 각각의 수행공간에서 각자 수행하기 때문이다.

《지리산 스님들의 못 말리는 수행 이야기》는 이들 세 스님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세 스님은 이력부터 특이하다.

비구니 천진 스님(34)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다시 홍익대 미대에 입학했다가 2000년 수덕사 견성암으로 출가했다. 또 다른 비구니 현현 스님(32)은 부산대 음대를 졸업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다 같은 해 견성암으로 출가했다. 그리고 2년 뒤 정봉 스님이 사는 홍서원으로 천진 스님과 함께 들어왔다.

현현 스님의 친아버지인 정봉 스님의 이력은 더 특별하다. 중졸 학력에 시내버스 운전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다 서른한 살 때 홀연 수행의 길로 들어섰다. 문득 "세상 일을 다 해 마쳤다"는 생각과 함께 생사의 도리를 증득했고,부산 해운정사에서 부목처사로 3년,태백산의 개집만한 토굴에서 3년,맥전마을에 와서는 칼바람 몰아치는 자연동굴에서 3년을 홀로 수행했다. 조계종 전 종정 혜암 스님에게 인가를 받았고,조계종 원로 활안 스님을 은사로 쉰이 다 된 나이에 정식으로 출가했다.

헌 문짝과 헌 나무로 지은 한 평 남짓한 토굴에 살면서 정봉 스님을 모시고 수행하는 두 비구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 자락 맑은 바람 같고 옹달샘 같다. 배추벌레를 위해 텃밭을 따로 만들고,개미와 쥐,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은 물론 모기한테까지 피를 보시하는 이들의 삶은 그 자체가 보살행,자비행이다.

창문에 지은 벌통을 차마 떼지 못해 덧창문을 포기한 채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감내하는 정봉 스님은 "나의 허공을 자비로 숨쉬게 하라"고 강조한다. 또 로또에 당첨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그 돈을 전액 기부해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몇 생에 걸쳐 받을 복을 한꺼번에 당겨 받는 것이기 때문에 남는 것은 싸움과 불화,불안뿐이라는 것.따라서 복권 당첨금을 남 돕는 일에 쓰면 그 공덕으로 몇 생 동안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일거수 일투족이 자비로 가득한 이들의 일상생활과 함께 부적,전생,잘 죽는법,수행자와 화장품,채식 등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한 도움말,참된 선지식을 찾는 법과 참선을 위해 갖춰야 할 것 등 수행을 위한 길잡이가 실려 있다.

전생을 알고 싶으면 현재 내 모습을 보면 되고,삼재가 들었다는 해에는 부적을 살 게 아니라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형식적인 방생 대신 채식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또 계율의 바탕 위에 공성(空性)에 대한 이해와 참된 자비심을 갖춘 분을 선지식으로 모시고 의지하라고 조언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