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살라의 규또사원에서 바라본 설산>
지난 겨울 규또 사원을 방문했었을때, 해인사 율원장이었던 혜능스님을 만나뵐 수 있었다. 혜능 스님께서는 규또사원의 선실에서 수행과 함께 역경불사를 하고 계셨다.
마침 우리가 다람살라에 있는 동안, 며칠동안 내리던 비는 그치고, 그 뒷산은 눈부신 설산으로 변해버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혜능스님도 몇 년간 그곳에 살면서,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조그만 선실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계율과 수행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특히, 계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공감할 수 있었다.
<진흙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피어나는 연꽃처럼 청정한 수행자가 되자>
근간에 한국불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중에서, 계율에 대한 혼동된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측면이 많다. 특히, 보살계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는 것이 제일 안타까운 점이다.
비구/비구니/사미/사미니가 받는 계와, 재가불자들이 받는 5계와 8계는, 별해탈계라고 하여 자신(개별)의 해탈을 위해서는 받드시 지켜야만 하는 계이다. 이와는 달리 보살계는 '이타행' 즉 '보살행'을 실천하기 위한 계인 것이다.
티벳의 경우, 아티샤스님의 보리도등론 이후로, 이러한 별해탈계와 보살계, 또한 밀교의 계율이 서로 상충되지 않고 수행단계에 따라 필요한 차제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별해탈계는 보살계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계 자체를,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수행자에게 주지 않고, 너무나 형식적으로 주는 경우가 다반사가 되다보니, 계를 받고 바로 파하는 것에 대해 너무나 무감각해지고 있다.
특히 보살계의 경우, 위대한 보살의 원력을 낸 수행자가 받는 계라고 인식되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노보살님들의 '기복 행사'정도로 인식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래서 계를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수계하는 보살계의 계목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아예 지킬 생각은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는 현대인들이 술을 마시지 않고, 고기와 오신채를 먹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그것을 어떻게 지키냐고 하면서, 수계받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고도 하지만...
계는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것을 목숨같이 실천해 나아가기 위함이니, 스스로가 보살행의 발심이 되지 않으면 받지 않아야만 되는 것이다.
이는 불자로써 오계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오계의 다섯번째가 '술을 마시지 말라'인데, 지금 불교계에서는 오계가 대중화되면서, 계사 스님들이 '이 계목은 술을 아예 마시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취하도록 마시지 말라는 말이다.'라고 멋대로 계를 왜곡하여 해석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러나 이 계목은 말 그대로 '술을 마시지 말라'이니, 이것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예를 들어 술을 판다든지, 영업을 한다든지 등), 오계중에 네 가지의 계율만 받아 지니되, 언젠가는 노력해서 온전한 계율을 받게 될 것을 다짐해야 하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계를 받고, 또한 무감각하게 계를 파하는 것이 습관화되면,
우리의 수행또한 미세하고 정확하게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자각해야 한다.
소위 선방에서 공부한다는 재가 불자들이나 스님들은, '술이나 고기, 오신채'에 대한 아주 비뚤어진 관념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누군가가 이러한 보살계를 세밀하게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찬탄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계에 걸려있다"고 비아냥거리는 경우가 꽤 많다.
티벳의 경우, 밀교의 행법으로, 자신에게 남아있는 분별심을 철저히 파괴하기 위해, 세간에서 혐오하는 것을 일부러 취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어떤 수행자들은 시체를 베고 자기도 하며, 일부러 동물의 뼈나 화장막의 뼛가루를 자신의 몸에 두루거나 바르기도 한다. 또한 위대한 성취자 중에서는 평생을 쓰레기를 먹었던 분도 계셨고, 생선 내장만을 먹으면서 평생을 지내신 분도 계셨다.(우리나라의 나옹스님도 헌식한 음식들을 탁발해 드셨다.)
수행하는 사람들 중에 혹자는,
세상사람들이 탐욕으로 즐기는 것들, 즉 고기와 술과 오신채를 똑같이 즐기면서,
스스로는 분별심을 넘어섰다고 우기고 있으니...이런 말을 하는 불자들은,
참으로... 스스로의 계체를 파할 뿐더러 불법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혜능스님께서 티벳사원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사원전체의 구성원이 선지식을 중심으로 철저히 계율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반이 하반을 억압하거나, 법랍에 의한 권위주의가 참 많은데 비해, 티벳의 도량은 선지식을 중심으로 너무나 평등한 관계 속에서 율장에 의거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보름에 한 번 씩 포살을 하는 것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고, 심지어 무문관을 수행하는 수행자조차도 유나스님이 직접 찾아가서 포살을 한다고 하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계율만이 능히 수승한 도를 얻으리.
자비심을 갖추어 함께 닦으면
최상의 청정한 지혜로 저절로 허물은 없어지며
최고의 장엄이 되네.
계는 미세한데 까지 지녀야 계체가 온전한 것이니
아무리 털끝만큼이 빈다하더라도 파괴되고 만다.
그러므로, 범하면 대도에 장애가 있고
번뇌를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악업이 증장되어 지옥에 떨어진다.
**티벳에서는 계를 어겨서 다음의 네 가지가 성립되면 계가 완전히 파했다고 간주한다.
1. 실수로 했다고 여기지 않는 것.
2. 같은 행동을 반복하겠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
3.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흡족해 하는 것.
4. 부끄러움을 모르고 신중하지 못해서, 자신의 행동의 결과로 타인이 받게 될 결과를 상관
하지 않게 되는 것.
만일 보살계를 받고 하나라도 파하게 되면, 계를 파한 나쁜 과보를 피하기 위해 다음의 네 가지 대치를 하고 나서, 다시 보살계를 수계해야 한다.
**네 가지 대치
1.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것.
2. 자신의 파한 것을 회복하는 것.(삼보에 귀의하고, 보리심을 낸다)
3.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는 것.
4. 좋은 공덕을 쌓는 것.(수행)
이상의 사항을 살펴볼때 우리나라의 보살계를 받은 스님들과 불자님들은 다시 한번 계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펴 봐야 할 것이다.
지난 겨울 규또 사원을 방문했었을때, 해인사 율원장이었던 혜능스님을 만나뵐 수 있었다. 혜능 스님께서는 규또사원의 선실에서 수행과 함께 역경불사를 하고 계셨다.
마침 우리가 다람살라에 있는 동안, 며칠동안 내리던 비는 그치고, 그 뒷산은 눈부신 설산으로 변해버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혜능스님도 몇 년간 그곳에 살면서,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조그만 선실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계율과 수행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특히, 계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공감할 수 있었다.
<진흙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피어나는 연꽃처럼 청정한 수행자가 되자>
근간에 한국불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중에서, 계율에 대한 혼동된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측면이 많다. 특히, 보살계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는 것이 제일 안타까운 점이다.
비구/비구니/사미/사미니가 받는 계와, 재가불자들이 받는 5계와 8계는, 별해탈계라고 하여 자신(개별)의 해탈을 위해서는 받드시 지켜야만 하는 계이다. 이와는 달리 보살계는 '이타행' 즉 '보살행'을 실천하기 위한 계인 것이다.
티벳의 경우, 아티샤스님의 보리도등론 이후로, 이러한 별해탈계와 보살계, 또한 밀교의 계율이 서로 상충되지 않고 수행단계에 따라 필요한 차제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별해탈계는 보살계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계 자체를,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수행자에게 주지 않고, 너무나 형식적으로 주는 경우가 다반사가 되다보니, 계를 받고 바로 파하는 것에 대해 너무나 무감각해지고 있다.
특히 보살계의 경우, 위대한 보살의 원력을 낸 수행자가 받는 계라고 인식되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노보살님들의 '기복 행사'정도로 인식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래서 계를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수계하는 보살계의 계목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아예 지킬 생각은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는 현대인들이 술을 마시지 않고, 고기와 오신채를 먹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그것을 어떻게 지키냐고 하면서, 수계받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고도 하지만...
계는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것을 목숨같이 실천해 나아가기 위함이니, 스스로가 보살행의 발심이 되지 않으면 받지 않아야만 되는 것이다.
이는 불자로써 오계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오계의 다섯번째가 '술을 마시지 말라'인데, 지금 불교계에서는 오계가 대중화되면서, 계사 스님들이 '이 계목은 술을 아예 마시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취하도록 마시지 말라는 말이다.'라고 멋대로 계를 왜곡하여 해석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러나 이 계목은 말 그대로 '술을 마시지 말라'이니, 이것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예를 들어 술을 판다든지, 영업을 한다든지 등), 오계중에 네 가지의 계율만 받아 지니되, 언젠가는 노력해서 온전한 계율을 받게 될 것을 다짐해야 하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계를 받고, 또한 무감각하게 계를 파하는 것이 습관화되면,
우리의 수행또한 미세하고 정확하게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자각해야 한다.
소위 선방에서 공부한다는 재가 불자들이나 스님들은, '술이나 고기, 오신채'에 대한 아주 비뚤어진 관념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누군가가 이러한 보살계를 세밀하게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찬탄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계에 걸려있다"고 비아냥거리는 경우가 꽤 많다.
티벳의 경우, 밀교의 행법으로, 자신에게 남아있는 분별심을 철저히 파괴하기 위해, 세간에서 혐오하는 것을 일부러 취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어떤 수행자들은 시체를 베고 자기도 하며, 일부러 동물의 뼈나 화장막의 뼛가루를 자신의 몸에 두루거나 바르기도 한다. 또한 위대한 성취자 중에서는 평생을 쓰레기를 먹었던 분도 계셨고, 생선 내장만을 먹으면서 평생을 지내신 분도 계셨다.(우리나라의 나옹스님도 헌식한 음식들을 탁발해 드셨다.)
수행하는 사람들 중에 혹자는,
세상사람들이 탐욕으로 즐기는 것들, 즉 고기와 술과 오신채를 똑같이 즐기면서,
스스로는 분별심을 넘어섰다고 우기고 있으니...이런 말을 하는 불자들은,
참으로... 스스로의 계체를 파할 뿐더러 불법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혜능스님께서 티벳사원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사원전체의 구성원이 선지식을 중심으로 철저히 계율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반이 하반을 억압하거나, 법랍에 의한 권위주의가 참 많은데 비해, 티벳의 도량은 선지식을 중심으로 너무나 평등한 관계 속에서 율장에 의거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보름에 한 번 씩 포살을 하는 것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고, 심지어 무문관을 수행하는 수행자조차도 유나스님이 직접 찾아가서 포살을 한다고 하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계율만이 능히 수승한 도를 얻으리.
자비심을 갖추어 함께 닦으면
최상의 청정한 지혜로 저절로 허물은 없어지며
최고의 장엄이 되네.
계는 미세한데 까지 지녀야 계체가 온전한 것이니
아무리 털끝만큼이 빈다하더라도 파괴되고 만다.
그러므로, 범하면 대도에 장애가 있고
번뇌를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악업이 증장되어 지옥에 떨어진다.
**티벳에서는 계를 어겨서 다음의 네 가지가 성립되면 계가 완전히 파했다고 간주한다.
1. 실수로 했다고 여기지 않는 것.
2. 같은 행동을 반복하겠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
3.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흡족해 하는 것.
4. 부끄러움을 모르고 신중하지 못해서, 자신의 행동의 결과로 타인이 받게 될 결과를 상관
하지 않게 되는 것.
만일 보살계를 받고 하나라도 파하게 되면, 계를 파한 나쁜 과보를 피하기 위해 다음의 네 가지 대치를 하고 나서, 다시 보살계를 수계해야 한다.
**네 가지 대치
1.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것.
2. 자신의 파한 것을 회복하는 것.(삼보에 귀의하고, 보리심을 낸다)
3.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는 것.
4. 좋은 공덕을 쌓는 것.(수행)
이상의 사항을 살펴볼때 우리나라의 보살계를 받은 스님들과 불자님들은 다시 한번 계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