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無禪師開示/中文開示 | Posted by 보리심의 승가 홍서원 보리심의 새싹 2019. 4. 21. 16:44

我們回家吧!

我們回家吧!

有位居士問師父 "我聽說有人很喜歡偷盜, 甚至出獄以後還是繼續偷盜, 無法停止。為什麼他會這樣呢?"

師父說 "因為他已經上了癮, 只有偷盜時, 他才能感到喜悅和人生的意義。按照各自的意識, 每個人都追求各種的覺醒。覺醒意味著我們的意識醒來的體驗。例如為了覺醒 , 有些人有可能吸毒, 有些人故意地試著攀岩之類等很危險的事。夜晚經過公墓時, 你們都會雞皮疙瘩吧! 這也是一種覺醒。但是透過這些外面的情況而感到的喜悅是假的覺醒。

其實我們本來一直在覺醒的狀態, 但是由於迷惑而無法認識到本來的覺醒。所以跟一般人的追求不一樣, 修行者不會試著做什麼事而是以打坐就能回去本來的覺醒, 大覺。可是愚蠢的人不知如何回到本來的覺醒, 反而透過作惡業來追求覺醒。好戰狂人也為了一瞬間的喜悅感而拼命。你提到的那位小偷, 為了自己的喜悅感, 不斷地偷盜。但是來世他會怎麼樣呢?由於這輩子的惡業, 就算得到人身, 也一定會成為奴隸來還債, 如果得到是動物身, 就會為了主人要被勞役, 被打, 被吃來還債。所以請不要做這種壞的緣起, 因為你會一直在三惡道受苦。

那位居士再問師父 "當我祈禱時, 感到非常舒服和幸福, 但不知為什麼我會有這樣的感覺。"

師父繼續開示。"因為你的心合一了, 你才能感到舒服和幸福, 分裂的心無法讓你舒服和幸福。其實所有的修行都是為了讓你的心成為一體的方便法門。透過打坐, 禪修, 念佛, 你們會感到很舒服而法喜, 因為你很專心而你的心也會合一。

當小偷偷盜時他很專心一念, 他會感到喜悅。攀岩時也會很專心一念, 所以他們都會感到喜悅。當你放下煩惱妄想而以一念修行時, 你會感到法喜。總之透過修行, 你會能接近沒有自我意識的地方。所以當你的心合一時, 就能發大慈大悲心。一心, 一體, 慈悲心, 不二性都是同樣的意思。那你們能不能了解如何修行呢? 我們要修行不二性!

愛情會那麼誘惑的理由也是如此。一般人在愛裡才能放下自己而能感到不二。但是這愛情不會持續, 就算你一瞬間感到合一, 你的心會馬上分裂而再度感到痛苦。俗世上的不二性只是短暫的。所以, 透過修行, 當分裂的煩惱妄想回到一心, 無心時, 你才能體驗根本的不二。"

那位居士說 "老實說當我祈禱時, 想到師父的開示, 眼淚就流下來。"

師父跟他說 " 當你這樣做時, 你的心會被淨化而業障會消滅。你離家鄉很遙遠了, 最近才在回家的路上, 當然是喜極而泣。這條路是讓你解脫而成佛的路, 所以是無法測量它的價值的。你正在回鄉的路上, 正在回去你的根源過程, 你正在走向沒問題的地方啊!請繼續走下去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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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BlogIcon 금낭화 2019.04.28 13:49

    옴아훔

    이번 제주법회를 마지막으로
    홍서원지역법회의 대단원의 막이 내렸습니다.
    오로지 부처님!
    스승님을 수희찬탄합니다.
    현존에서 벗어나신지 오래...
    이미 열반상태에 계신...
    관세음보살님의 현현이신...
    정봉무무큰스님께
    목숨다해 영원토록 귀의합니다...
    지극하신 감로법
    무한한 자비방편
    어느것 하나 아낌없이 다 베풀어 주시며
    중생고통 해결해 주시느라 쉴수도 없으셨던
    스승님을 이제는 우리가 기쁘게 해 드릴 차례..
    끝내 성불을 이루어 스승님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2019년 초파일 법문이
    사바세계에서 듣는 스승님의 마지막육성법문
    이라 할지라도.
    놀라지 않고 동요됨없이 당차게
    한발한발 오로지 스승님의 거룩하고 위대한 길을 우르러며 나아갑니다.
    한배두배 마음을 다바쳐 합장예경 올립니다.

    헤아리는거 좋아하고 식심 쓰고 살 수밖에 없는
    뭇중생들 모두 깨닫게 하여
    함께 아미타불세계로 데려가시고 싶어 하시면서.
    끝없이 끝없이 설해 주신.
    법문동영상 곳곳의 이근원통 이야기!

    심성을 파고들어 심안을 열어 주시는
    심오한 종소리.
    이근원통 깨달음으로 직입하는.
    스승님의 수승한 종소리를 늘 기억합니다.
    늘!

    무량수 무량광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금강수보살 옴 마니 반메 훔!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직수 2020.01.08 18:11

    안녕하세요? 홍서원 불자님들
    하하 호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는 장현수 도반이 번역한 중문 법문, 정봉스님께서 허락하셔서 큰스님 귀한 법문 함께 하고 싶어 올립니다 .
    옴ㆍ아ㆍ훔 _()_


    집으로 돌아 갑시다!

    어느 거사가 스님께 물었다. "어떤 사람이 도둑질을 너무 좋아해서 심지어는 출옥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도둑질을 하고, 멈출 수가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 사람은 왜 그럴까요?" 스님이 말씀 하시길, 왜냐하면 그 사람은 이미 중독이 되서 그래요. 도둑질할 때만 희열과 인생의 의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의식에 따라 사람마다 모두 여러가지의 각성을 추구합니다. 각성은 우리의 의식이 깨어나는 체험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각성을 위해 어떤 사람들은 마약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암벽등반 같은 위험한 일들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밤에 공동묘지를 지나갈 때면 닭살이 돋을 겁니다. 이것도 일종의 각성이죠. 하지만, 외부상황을 통해서 얻는 희열은 가짜 각성입니다.
    사실 우리는 본래 각성 상태에 있는데, 미혹때문에 본래의 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 수행자는 일반인의 추구와 달라서, 어떤 것을 해보려고 시도하지 않아도 오히려 명상으로써, 곧 본래의 각성으로 돌아 갈수 있수 있어요. 대각(大覺)!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본래의 각성으로 돌아갈수 있는지도 모르고, 악을 짓는 것을 통해서 각성을 추구합니다. 마치 전쟁을 좋아하는 미치광이가 일순간의 흥분을 위해 목숨을 거는것 처럼 말입니다. 말씀하신 그 도둑은 자신의 희열을 위해서 끊임없이 도둑질을 하는데 그 사람의 다음 생은 어떻게 될까요? 이번 생의 악업때문에 사람 몸을 받더라도, 반드시 노예가 되서 빚을 갚게 됩니다. 만약에 동물의 몸을 받는다면 주인을 위해 노역을 해야하고, 얻어 맞고, 잡아 먹혀서 빚을 갚게 됩니다. 그러니 이런 나쁜 緣起는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계속해서 삼악도에서 고통을 받아야하기 때문입니다.

    그 거사가 다시 스님께 물었다. "기도할 때 매우 편안하고 행복을 느끼게 되는데,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계속 법문하시기를...
    왜냐하면, 마음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편안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분열된 마음은 편안하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실 모든 수행은 자신의 마음으로 하여금 일체를 이루게 하기 위한 수행방편 입니다. 명상, 참선수행, 염불을 통해서 편안함과 법희(法喜)를 느낄 수 있고, 전념하기 때문에 마음이 하나가 되는것 입니다.
    도둑질을 할때 그 사람은 일념으로 몰두하기 때문에 흥분을 느끼는 것입니다. 암벽을 등반할 때도 일념으로 몰두하면 환희를 느끼게 됩니다.

    번뇌망상을 내려놓고 일념으로 수행할 때, 법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요컨데, 수행을 통해서 자아의식이 없는 곳에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대자대비의 마음을 발하게 됩니다. 일심, 일체, 자비심, 不二性은 모두 같은 의미 입니다.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나요? 우리는 불이성을 수행해야 합니다. 사랑이 그렇게 사람을 유혹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사랑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내려놓고 불이를 느끼죠. 그러나, 사랑은 지속되지 않아요. 비록 일순간 하나임을 느끼더라도 마음은 바로 분열되어 다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속의 불이성은 아주 짧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서 분열된 번뇌망상이 일심, 무심으로 돌아 올 때 비로소 근본적인 불이성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거사가 말하기를, "솔직히, 저는 기도를 할 때 스님의 법문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스님께서 답하셨다...그럴 때 마음이 정화되고 업장이 소멸 되는 겁니다. 고향을 떠나 아주 멀리 있다가 최근에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이라면 당연히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겁니다. 이 길은 거사님으로 하여금 해탈하고 부처님이 되게 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 가치는 측량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거사님은 고향으로 돌아 가는 길 위에 있고, 근원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있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을 향해 걸어 가고 있습니다!
    계속 걸어 나아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