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이야기(India)/인도속의 티벳사원(2005) | Posted by 보리심의 승가 홍서원 보리심의 새싹 2006. 1. 3. 10:39

인도속의 티벳사원 제 3탄- 규메사원과 뗀펠 노스님

                                (옥상에서 바라본 규메주변 풍경)

은사스님께서는 늘 자비심이 유별?나셨다. 그래서 가끔 속 좁은 우리에게는 너무 '오바'하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 규메에 와서 보니, 스님의 '오바'는 티벳스님들의 '오바'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러한 티벳스님들을 겪어보고 스님께서 하신 말씀,

"내 평생, 이렇게 속 씨원할 때가 없었다. 내랑 진짜 비슷하네."

우리가 게스트 하우스에서 식사할때마다, 식당 한구석에서는 두 스님이 밥먹는 우리를 열심히 관찰하고 있다. 우리가 음식이나 차를 절반쯤 비우면, 바람같이 달려와서 다시 찻잔을 가득 채워주고 음식을 가득 채워준다. 배가 불러서 거절을 해도, 계속 채워준다. 우리 얼굴에 '진짜로 배가 불러서 더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것이 100% 확실히 보여지면 그때서야 그만 권하는 것이다.
        (초펠스님의 아버님과 여동생, 두쌍의 부녀가 함께 찍은 사진.ㅋㅋ^^
      어머님과 남동생은 초펠스님의 형님인 잠링스님이 계신 다람살라에서 사신다)

초펠스님의 아버님집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펠스님 여동생분이 너무나 맛있는 채식음식을 장만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단촐하지만 단아한 집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집안에 있는 불단을 참배하자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와, 정말 맛있는 음식들. 두세번 권할 때마다, 매번 너무 배부르다고 사양해도... 통하질 않았다.

뗀펠 노스님은 끊없이 시자스님에게 음식을 권하라고 시키신다. 우리가 시자스님에게 '정말로 배부르다. 도저히 못먹겠다.'고 하소연을 해도, 시자스님인 뗀진 스님은 웃으면서 자신의 은사스님이 시키는 말에 100%복종을 할 뿐이다. 결국 숨쉬기 곤란한 지경이 되어서야 노스님께서 웃으시면서 그만 권하신다.

규메에서 근처의 세라 사원과 남돌링 사원을 보러 갔을 때는 자주자주 식당에 들러 음료를 사주시곤 하셨다. 우리는 더운 날, 연속적으로 뜨거운 짜이를 마시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번은 망고쥬스를 시켜서 먹었다.

그 날 저녁, 게스트 하우스에서 그 날 탐방한 내용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에서 뭔가 딸그락 소리가 났다. 바람소리라고 생각하고 계속 이야기를 하다가, 그래도 확인하려고 나가보니, 문고리에 '망고쥬스'가 걸려 있었다. 얼른 입구 쪽으로 내다보니, 뗀펠 노스님이 나가시는 모습이 보였다. 스님께서 계시는 곳은 게스트하우스와 거리가 있고, 또 음료를 파는 곳은 스님 숙소보다도 더 먼 거리인데, 시자를 시키지도 않고 당신 혼자서 사와서 몰래 두고 가신 것이었다.

              (노스님의 아침공양시간. 우유에 짜파티를 찍어 드시는 모습)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티벳스님들이 잘 먹고 산다고 오해할까봐, 스님들의 일상을 말해주고 싶다. 티벳사원에는 보통 사원소속의 젖소가 있다. 규메의 경우 하루에 두번 젖을 짜는데, 이 우유를 끓여서 밀가루 빵(짜파티)과 함께 하루 세번 배급을 한다. 배급 종이 울리면, 시자들은 보온통을 들고나와 우유와 짜파티를 받아간다. 이것이 식사의 전부이다.

약간의 과일과 채소들은 개인적으로 구입을 한다. 티벳사원이 인도로 망명온 이후에, 티벳사원내의 음식은 채식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티벳사원은 음식은 양념으로 범벅이 된 우리의 채식식단에 비하면 참으로 간소하고 담백했다.

뗀펠 노스님방에서 노스님과 함께 티벳경전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참으로 자비롭고 마음이 유연하시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시자스님이 바빠서 통역없이 함께 있은 적이 있었다.

그때, 노스님께서는 달력을 들고 오시더니 달력의 숫자를 가르켜가면서 대화를 시작하셨다. 당신의 나이, 당신이 티벳에서 넘어온 나이, 스님이 된 나이등을 달력의 숫자들을 짚어가면서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우리의 나이도 물으셨다. 우리도 달력을 짚어가며, 만국 공통어인 바디 랭귀지를 써가며, 한참을 진지하고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나 기발한 상황인가?

뗀펠 노스님과 우리를 보살펴 주었던 시자스님과 소임자 스님들 덕분에 우리는 규메에서 가슴 한가득 자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규메를 떠나기 하루 전날, 스님께서 티벳승복을 한벌 구해서 입으셨다.
                                규메 스님들이 티벳사람같다고 다들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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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상 2006.12.25 14:08

    감사합니다.
    한국의 최서남단이면서 외딴섬인 이곳에서 남인도의 규메사원과 티벳스님들의 사상과 생활과 교육상을 자세하게 소개받으니 정말 우리는 너무나 편리하고 행복한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듯 또 한해가 지나가고 새해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해의 새로운 소망을 가득실어 부처님께 혹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소원을 기원하고 복을 빌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앞날의 대부분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펼쳐집니다. 내뜻과는 상관없이 다가오는 불확실한 현재와 미래! 수없이 만나고 사라지는 일체인연과 현상속에 하루에도 수없이 희노애락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천오백년전 부처님께서는 이 세계와 일체 존재에 대한 현상의 인과법인 연기의 가르침을 설파하셨습니다. 한 톨의 씨앗이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데는 밭, 물, 공기, 빛, 거름, 노동등 수많은 환경조건이 돕는것과 같이 연기의 세계안에서는 인연으로 화합된 개체와 집단은 신구의 삼업으로 쌓은 업과에 의해 일정한 성품이 형성이 되고 업과가 일으킨 업력에 따라 미래의 방향을 정하여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홀로 가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선악의 행위로 인해 스스로 과보를 받을뿐 아니라 집단과 세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진행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내용은 바로 이 연기의 본질을 통찰하는것 입니다 그래서 연기를 보는자는 여래를 본다고 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연기하는 존재의 법칙을 깨달아 이 땅에 공존하는 자연과 생명의 수 많은 인연과 더불어 서로 의존하면서 서로를 아낌없이 보살피고 내몸같이 사랑하고 살리는 상생의 삶이 바로 보살행 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불자들은 의,식,주, 의약인 사사공양이 충족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가끔은 나를 위해 끝없이 베풀고 있는 부모 형제 이웃과 자연과 생명의 일체 인연의 은혜를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만물이 나를 바라보고 있고 나를 위해 존재하고 있으니 우리는 살아 있다는것 만으로도 한없이 감사하고 행복한 존재입니다.
    지금은 물질문명과 욕망이 팽배한 자본주의의 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많은 불자님들이 마음의 평화와 복을 기원하고 내생에 극락정토의 왕생을 발원하고 있습니다. 각기 다양한 수행법이 널리 보급되고 있지만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의지하고 역사가 검증된 조사의 가르침에 의거 해야만 바른길로 나아갈수 있습니다.
    .
    아름다운 연말을 보내시고 새해에는 더욱 몸과 마음이 안락하시기를 염원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림 2007.03.19 15:06

    초펠스님의 은사스님이신 뗀펠스님을 이렇게 다시 사진으로나마 뵙게 해주시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초펠스님의 향기는 아직도 한국티벳센터 광성사와 람림에 묻어 있습니다.
    큰스님과 작년에 한국에 오셨던 티벳스님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천경 2016.03.03 19:25

    ㅠㅠ ;;; 덧글 다시는 분들께서 너무나;; 길고 멋지게 달아주셔서 달기 부끄럽지만 ㅎㅎㅎ
    스님 얼굴 뵈니까 너무 좋아요!!! 그리고 티벳 스님들과 자비가;;쌍벽을 이루신다니 ^^
    너무 따뜻한 느낌이 드네요 !! 정말 감사합니다.

  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행행자 2016.03.04 09:02

    옴아훔!
    유천경 도반님 덕분에 홍서원 스님들께서 다녀오신 인도 속의 티벳 사원들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0년 전의 모습들을 이제 만나니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그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시간이 너무 없다는 선지식 스승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하루하루 소중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옴아훔 벤자 구루 뻬마 싯디 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