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현이와 나는 스킨이나 로션을 안쓴지 5년이 넘어간다. 속가에 있을 때도 잘 바르지 않았지만, 스님이 되고나서 이런저런 생각끝에 아예 안쓰기로 작정을 했다. 가끔 아가씨들은 우리에게 나이를 물어보기도 하는데, 나이를 말하면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한다.
"피부관리 어떻게 하세요?"
"아무것도 안 바르는데요.--;"
처음에는 겨울마다 우리 얼굴은 버짐이 핀듯 하얗게 일어나곤 했다. 나는 이제 요령이 나서, 겨울만 되면 아예 비누자체를 안쓰고 물로만 씻는다. 현현이는 비누로 세수하고 나서 얼굴이 피면 손바닥으로 쓱쓱 문지르면서 이렇게 말한다. "원래, 피는거야. 뭐가 어때서?"
사실 우리는 화장품을 안쓰면서 느낀 점이 참 많다.
첫째, 우리 수행은 사실 '비동일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화장품을 쓰면 쓸수록 우리의 의식은 나와 이 몸을 동일시하게 된다. 어디 몸뿐인가? 몸과 감촉, 부드러운 느낌에 대한 미묘한 애착이 매일 두터워지는 것이다. 수행자가 말은 그럴듯하게 한다. "뭐, 백년안에 쓰러질 몸인데." 그러나 이런 말을 하면서도, 매일 같이 스킨이나 로션을 바를 때는 몸의 무상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백년안에 쓰러질 몸이라도, 땡기는 피부는 참을 수 없나보다. 우리가 인도의 티벳사원을 방문했을 때, 스님들의 때묻은 승복에서, 비구니 스님들의 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얼굴에 가득한 기미에서...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었다.
둘째, 여자 수행자 특히 한국 비구니스님에게는 순결컴플렉스가 있는 듯하다.(아마, 수녀님들도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누군가의 시에도 나오듯이 "파르나니 깎은 머리"로 부터 시작해서, 남들에게 청순하고 깨끗하고 곱게 보여야만 하는 강박증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강박증은 제대로 불교를 인식하지 못하는 일반신도의 속된 바램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일부 스님들도 스스로 그 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강박증은 고급 화장품, 햇볕공포증, 과도한 세탁, 다림질한 풀옷 등등으로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얗고 곱디 고운 얼굴과 선이 곱게 난 빳빳한 풀옷에서 많은 불자들이 신심을 낸다면, 참으로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남루해 보이는 어떤 스님들에게서 향수나 화장품냄새가 아닌,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을 느낄 수만 있다면, 한국 불교는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새벽 2시 30이면 일어나, 부처님께 다기물을 올리고 찬물로 세수하면서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우리 도량의 발원을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내 얼굴을 보는 이는, 모두 불법에 환희심을 내어, 불도에 들어 성불하여지이다."
참고로 많은 화장품 회사들이 동물실험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화장품회사의 동물실험은 악질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동물실험안하는 회사와 하는 회사에 대한 자료를 같이 첨부하니 참고하시길. 동물실험하는 회사/안하는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