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야기/지혜 | Posted by 보리심 승가 홍서원 보리심의 새싹 2007.08.16 11:00

참선하기 전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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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대 까르마빠 존자님의 어릴 적 모습>


한국 불자들은 깨달음에 대한 열망이 참 큰 것 같다.

지난 겨울 인도 보드가야에 갔을 때, 세계에서 온 수많은 불자들을 보면서...그리고 한국불자들, 스님들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유독 간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불자들은 이러한 간절함에 비해 정작 '어떻게 하면  깨달음으로 나아가야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참선만이 최고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앉아만 있으면 깨달음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을 일반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이거나 재가불자이거나, 이번 생에 일을 해마치려면...절구통 같이 무조건 앉고 또 앉아, 좌복을 뚫을 정도가 되어야 깨달음을 얻는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라. 그 많은 숫자의 불자들이 선방에서 좌복을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소식을 얻었다고 하는 사람, 지견이 열렸다고 하는 분들을 쉽게 만난 적이 있는가? 아니면...참선을 하는 사람 스스로가  조금이라도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확신하거나, 지금 하고 있는 공부 길에 대해 흔들림 없는 지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옛 조사스님들께서, 하근기는 100일, 중근기는 삼칠일, 상근기는 칠일이면 이 공부를 마친다고 하셨는데...과연 깨달음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사실 가장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가르침에 다 나타나 있다.
전통적인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계,정,혜의 삼학을 이야기 하고, 또 대승불교에서는 깨달음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혜'와 '복덕', 두 가지 자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티벳에서는 한 생에 깨달음을 얻는 금강승 수행에 입문하려면, 사가행이라는 기초수행을 마쳐야만 하는데, 이를 잘 살펴보아도 깨달음에 대한 조건을 눈치챌 수 있다.
(사가행에는 공사가행과 불공사가행이 있는데,
공사가행은 무상과 죽음, 인과법, 윤회의 고통, 고귀한 인간 몸에 대해 거듭 사유하는 것이고,
불공사가행은 귀의와 보리심, 금강살타수행, 만달라 공양, 구루요가를 행하는 것이다.)

결국, 삼귀의, 스승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참회, 공덕쌓기, 출리심, 보리심...이 모든 것이 바탕이 되어야만이 참선공부 즉 지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년전에 인도 다람살라에 유명한 수행자가 한 분 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서 공부하던 한국 스님들과 불자들이 친견을 하러 가서, 참선 수행에 대해 이러 저러한 질문을 드렸더니, 그 분께서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오직 삼귀의와 보리심의 소중함에 대해서만 간곡하게 말씀 하셨다는 이야기를 잘 새겨 보아야 한다.

수행의 진전이 없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진솔하게 스스로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1. 나는 출리심을 발했는가?
   출리심을 발한 사람은 인과법, 무상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가졌기에...계를 지키지 말라고 해도 목숨처럼 소중하게 지키게 된다. 선방에서 공부한다는 스님들과 불자들이...아직도 고기나 오신채, 술, 담배에 대한 탐착을 버리지 못하거나, 온갖 세속잡사(TV보기, 풀옷 다려입기,  불사, 가족에 대한 애착 등등)에 얽매어 있는 경우를 참 많이 보게 된다. 출리심이 없이 도를 닦는다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아서...수십년 동안 좌복에 앉아 있어도, 마음 안에서는 세속의 삼독심만 견고해질 뿐, 공부에는 진전이 없게 되는 것이다.

2. 나는 진정 불법승 삼보에 귀의했는가?
   참선만이 최고라는 독단에 빠진다거나, 스님들을 업신여긴다거나, 예불의식을 하찮게 여긴다거나, 경전 공부를 우습게 여기는 행동들은...진정으로 삼보에 귀의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정봉무무 스님께서도 늘, 삼귀의가 제대로 되면, 그 순간에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삼귀의를 강조하신다. 부처님을 만났으되 어려운 일이 닥치면 원망하게 되고, 불법을 만났으되 수행하지는 아니하며, 스님들을 만났으되 공부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의지하지 아니하면 참된 불자라 하기 어렵다.

3. 나는 참회와 공덕쌓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그릇이 오염되어  있는데, 그것을 깨끗하게 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거나, 자신의 그릇이 큰 선물을 담기에는 너무 작은데, 그 그릇을 고수하려고 한다면 어리석다고 하지 않겠는가? 무조건 선방에 가서 앉을 것이 아니라...우리는 앉기 위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정봉무무스님께서 참괴심이 없는 사람은 절대 도가 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누누히 말씀하신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라도 생각된다.

4. 나는 스승님에 대한 흔들림없는 믿음을 지니고 있는가?
   이 공부는, 반드시 믿고 의지하는 선지식이 있어야만 한다. 세상 일도 먼저 그 길을 간 사람에게 물어보게 되는데, 하물며, 세세생생 성공하지 못했던 이 깨달음의 길을 가려는 사람이... 그 길을 먼저 가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이 또한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스님곁에서 몇 년째 공부해오면서, 실제로 자신의 것을 모두 내려놓고 오는 사람은 참으로 만나기 힘들었다. 조금 공부가 된다 싶으면 스승 위에 서려고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안풀리면 괜한 의심을 짓게 되고, 잘못을 지적해주면 서운해서 앙심을 품게 되니...진정한 귀의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한다.

5. 나는 보리심을 발했는가?
   과연  하루의 모든 일과가 ... 깨달음을 향한 생활인가?  아니면 깨달음의 허울만 뒤짚어 쓰고 세속적인 욕망과 애착으로 향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생에 대한 끊임없는 연민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일체지의 깨달음을 얻겠다는 발심이 되어 있는가? 아니면 큰 스님이 되고 싶어서...부와 명예를 얻기위해 깨달음을 얻겠다고... 작심했는가?

내 마음의 동기를 정말로...철저하고, 간절하고 간절하게 점검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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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르마빠 존자님이 직접 찾으신 잠곤 꽁뜔 린포체를 안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