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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바카사원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라본 따시종의 무지개)

따시종은 다람살라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반정도 떨어져 있다. 따시종에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잠자리가 참 편하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저 그런가보다 했는데, 따시종에서 하루 자고 일어나니, 그 말이 참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공간에 갔을 때, 정말 편안하고 좋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늘 편안하고 족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잠자리가 편안한 것도, 평생을 수행에 헌신하는 간절한 수행자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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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텐 아츄스님과 함께)

여기 따시종의 캄파카 사원에는 '독텐'스님들이 계신다. 보통 티벳에서 긴 머리를 틀어올리고, 흰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은 대처승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독텐스님들은 모습은 대처승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엄연히 비구계를 받고 청정하게 수행하는 비구승이다.

대처승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무문관 수행을 하기 때문에 머리를 삭발하기 힘든 이유도 있지만, '비구'라는 아만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이분들을 '비구의 모든 권리는 포기하고, 비구의 의무는 다하는 수행자'라고 한다.

가까이서 뵈니, 정말 천진하시면서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응축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에너지는 다름 아닌, 일체중생에 대한 자비심의 에너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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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진빠모 스님의 스승인 캄튤 린포체)

이 곳에도 환생한 린포체 스님이 계셨다. 전생에는 자신의 제자였던 독텐스님들이 지금은 린포체 스님의 수행을 지도한다. 이제 갓 20살을 넘었으나, 도량의 최고 어른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계셨다.

티벳불교의 최대 장점은 아마도, '선지식에 대한 절대적 귀의심'이 아닐까 한다. 여기 캄파카 사원의 경우, 누군가 독텐 수행을 하고 싶으면, 우선 선지식이나 호법신전의 기도를 통해서 간택을 받아야 한다. 스스로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수행에 입문하려고 해도 선지식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수행단계마다 철저히 점검을 받게 되어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지식이 수행점검을 제대로 해주는 경우가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행자는 스스로 자신의 근기를 설정하고, 자신의 수행단계 또한 스스로 점검한다. 그 결과, 대부분의 수행자는 자신이 최상근기라고 생각하여 참선수행을 선택하고, 수행중의 어떤 경계가 나타나면 스스로 한소식 했다고 자부하는 폐단이 나타난다.

또한 어떤 선지식을 의지하여, 점검을 받으려고 하여도 '화두나 들게'라는 정해진 대답만을 듣고 오는 경우가 많다. '화두나 들게...' 참 맞는 말이긴 한데, 사실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간화선 수행이야말로, 선지식에 대한 절대적인 귀의와 철저한 점검이 없이는 수행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 불교계의 선지식 스님들은 수행자의 근기를 성숙시켜주고, 수행을 철저히 점검해주는 역할보다는... 단순히 '견성했다'를 심판해 주는 심판관의 역할만 하거나 계율로서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데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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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파카 사원에 온, 동규갓찰링의 비구니 스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