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야기/지계 | Posted by 보리심 승가 홍서원 보리심의 새싹 2006.07.13 10:05

아직도 육식이 그리운 그대에게

 

아직도 육식이 그리운 그대에게


이 글은 불자로서 채식을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이나 혹은 채식을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오늘날 불자로서 채식을 선택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하고자 함이다. 사실 어떤 사람이 채식을 하려고 결정할 때는 개개인마다 서로 다른 마음의 동기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를 위해서 할 수 도 있고, 아니면 다른 생명체에 대한 자비심으로 채식을 선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어쩔 수 없어서 남따라 채식을 선택할 수 도 있겠다. 그러나 마음의 동기가 어떠한 것인가에 따라 그 행동의 결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채식을 선택했던 사람은 몸이 다시 건강해지면 언젠가 육식을 다시 할 수도 있고, 남 눈치보며 채식을 결정했던 사람은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얼마든지 육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생명체에 대한 자비심과 연민심 그리고 수행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채식을 선택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그리 쉽게 채식을 그만두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채식을 선택한 이유는 그 사람들이 숨쉬며 존재하는 이유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혹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채식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채식을 하는 진정한 이유를 되돌아보고, 만약 불자로서 육식을 늘 해왔던 사람이라면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과 채식과의 관계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했으면 한다.


당신이 채식을 포기하려는 그 순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1. 채식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


육식을 금지하는 능가경, 범망경, 능엄경 등을 부처님의 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채식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초기불교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불멸이후에 발달한 불교사상도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란 말인가? 예를 들어 중관, 유식, 선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란 말인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말에 의지하지 말고 뜻에 의지하라’는 가르침을 등진 사람으로, 마치 어떤 식물이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그 식물의 떡잎에 그와 같은 꽃과 열매가 없었다고 해서 그 떡잎과 꽃, 열매가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같다.


2. 수행자는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한다?


초기불교에서는 걸식문화였고 이를 통해 수행자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였다. 그 당시의 육식은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수행자가 만일 육식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선택에 의한 것이다. 즉 욕망에 의해서, 고기를 먹고 싶어서, 예전에 길들였던 탐착의 맛을 잊지 못해서 하는 행동이라는 말이다.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간이 맞지 않고, 차갑게 식고, 만든지 며칠지난 음식을 계속해서 먹여보라. 만일 그 사람이 그러한 음식이라도 항상 감사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는 정말 주는 대로 받아먹는 수행자이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러한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부처님의 말씀으로 합리화하는 거짓된 수행자이다.



3. 대중이 소를 잡으면 같이 소를 잡아라?


아마도 강원이나 여타의 공동체에서 많은 선배들이나 어른 스님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말이 우리나라 불교를 뿌리채 썩게 만든 아주 몹쓸 말이라고 생각된다. 대중이 소를 잡으면 같이 잡는 것은 동사섭이 아니다. 이는 양떼의 무리에 합류하여,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면서 앞만 보면서 따라가는 무의식적이고 무지한 행동이다. 동사섭의 진정한 뜻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로 만 해서는 안 따라 올 경우 자신이 직접 그 실천을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을 진정 그 가르침 안으로 들어오게 함을 의미한다. 스스로 단 한번도 자신의 계율을 목숨처럼, 자신의 눈동자처럼 소중히 지켜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사람은 동사섭을 운운하기 전에 자신의 수행이 과연 스스로의 몸이라도 건질만 한 것인지 점검해 보아야할 것이다.



4.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다?


혹자는 자신이 육식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체질이라고 말하곤 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 사람은 많은 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채식을 진정으로 실천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막에 사는 생물들이 여타의 지역과는 다른 변이를 거쳐온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유식설에 따르면 자신이 지은 행동의 씨앗은 모조리 아뢰야식에 저장이 되는데, 체질상 채식이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가 대승권에서 수행자로서 살아온 경험이 없다는 뜻도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생에라도 마음을 내어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길들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삼계유심, 만법유식인데 어디에 몸이 존재하는가?

 


5.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다?


부처님께서도 육식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셨다. 특히 오늘날, 대량으로 동물들을 식용으로 사육하는 잔인한 문화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윤을 높이기 위하여, 각종 항생제와 살충제를 사육하는 동물에게 먹이고 있다. 또한 동물들은 자신들이 죽을 때, 공포와 분노 속에서 죽게 되는데, 고기를 먹고 힘이 난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약품이 그득한 살덩이와 분노와 공포가 응집된 에너지를 먹고 힘이 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는 마약을 먹고,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그것에 의지해서 세속적인 힘을 끌어내는 것과 같아서 수행자에게는 육식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은 단지 7%인데, 이는 콩밥만 먹어도 해결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건강하기 원한다면 반찬투정 말고 채식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


동물들도 자신이 배부르면 더 이상의 살생은 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약 자비심과 연민심을 기르기 못한다면, 이번 생에 사람 몸 얻은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대승의 진정한 가르침을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지라도 그것을 비방하거나 곡해한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이 이번 생에 약한 몸을 가지고 태어나서 병치레가 많거나 약을 써도 잘 안 낫는 것은 다른 생에 살생의 악업으로 인한 과보인데, 몸이 아프다고 해서 오히려 육식을 한다면 이는 언발에 오줌 누는 것과 같아, 자비의 공덕자량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니, 어찌 다음 생에라도 건강한 몸을 기약할 수 있으랴.

깨달음의 자리는 육식, 채식을 넘어선 곳이라지만, 수행자로서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는 육식, 채식을 분명히 가려 자신의 마음의 동기를 철저히 점검해야할 자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