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불친절한 종교다. 기독교 성경처럼, 한권 뚝딱 외우는 것으로 공부의 태반을 끝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믿고 따르면 자애로운 부처님이 선심 쓰듯이 ‘구원’을 선물하는 그런 종교도 아니다.
그렇다고 묻는 말에 친절히 답변해 주지도 않는다. 같은 질문에 이런저런 다른 답을 해 헷갈리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무시하듯 침묵하기도 한다. 심지어 소리를 지르고 때리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하니, 불교의 불친절함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불교는 신의 은총이 아닌 스스로 수행해 깨달아야 하는 자력(自力)의 종교다. 그래서 갈 길이 더욱 멀고 험하다. 그런데 깨달음은 고사하고 제대로 아는 것조차 힘이 드니 그야말로 고행의 길이 따로 없다.
『불교초보탈출 100問 100答』은 불교에 대한 불친절의 오해를 말끔히 풀어낸 역작이다. 기초적인 교리는 물론 불경스러워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했던 민감하고 감각적인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하고 있다. 불교의 교리와 수행, 계율의 문제에서 정치와 경제, 뇌사와 우주에 관한 이해까지, 다루지 않은 분야를 찾기 힘들 정도로 광대무변한 지적 스펙트럼이 감탄을 자아낸다.
사실 상당한 내공을 쌓은 불자라 하더라도 반짝 떠오른 의문이나 풀리지 않은 의심을 파헤치기 위해, 팔만사천의 대장경 속을 헤집거나 산 속 깊이 선지식을 찾아가는 일은 질문의 해답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현대를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일상의 소소한 일에서 경제, 정치적인 문제까지 지평을 넓히다 보면 불교의 본질에서 벗어났다며 타박부터 받기 일쑤다.
그러나 저자 김성철 교수(동국대 불교학과)는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회피하거나 권위에 기대 뜬 구름 잡는 식의 식언을 늘어놓지 않는다. 수행을 하듯, 탐구를 하듯 무수한 경전과 선사들의 어록을 넘나들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치열하게 풀어내고 있다.
“서산대사도 살생을 했는데 살생으로 인한 과보를 받았을까. 불자가 아닌 사람이 불교의 계율을 어겨도 그에 대한 과보를 받을까. 플라토닉 러브도 음행에 포함될까. 채식도 결국은 살생이 아닌가. 미물인 벌레가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간은 시작이 있는가, 우주에는 끝이 있는가.”
책 속의 질문들은 저자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내용을 간추린 것으로 다양하고 기발하다. 그러나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저자의 명쾌하고, 가끔은 통쾌하기까지 한 답변들이다. 앓는 이가 쑥 빠지는 느낌이다.
“매번 질문이 올라올 때마다 자판을 두드리기가 망설여진다. 그런데 기발한 질문, 쟁점이 될 만한 질문, 진지한 질문이 올라오면 만사 제쳐두고 컴퓨터 앞에 앉게 된다. 몇 줄 정도의 답글을 달려고 자리에 앉지만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장문의 답글이 만들어지고 만다.”
저자의 답변은 치열하지만 모두 한 줄에 꿰어있는 염주의 알처럼 질서정연하다. 교리나 수행을 ‘학문’으로만 보지 않고 철저히 신앙의 차원에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학문을 체계불학(體系佛學)이라는 용어로 정리하고 있다. 따라서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체계불학, 즉 학문과 신앙이 하나가 된 새로운 불교학 방법론이라는 예리한 칼날로 재단한 불교의 고갱이다.
책은 수행, 교리, 윤리, 이웃종교 등 4개의 마당으로 구성돼 있다. 치과의사에서 불교학자로 예사롭지 않은 여정을 살아 온 저자의 삶만큼이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답변들이 순간순간 손과 무릎이 맞닿은 환희로운 입맞춤을 선사하고 있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