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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이야기(India)/인도티벳사원2005

인도속의 티벳사원 제 3탄- 규메사원과 뗀펠 노스님

                                (옥상에서 바라본 규메주변 풍경)

은사스님께서는 늘 자비심이 유별?나셨다. 그래서 가끔 속 좁은 우리에게는 너무 '오바'하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 규메에 와서 보니, 스님의 '오바'는 티벳스님들의 '오바'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러한 티벳스님들을 겪어보고 스님께서 하신 말씀,

"내 평생, 이렇게 속 씨원할 때가 없었다. 내랑 진짜 비슷하네."

우리가 게스트 하우스에서 식사할때마다, 식당 한구석에서는 두 스님이 밥먹는 우리를 열심히 관찰하고 있다. 우리가 음식이나 차를 절반쯤 비우면, 바람같이 달려와서 다시 찻잔을 가득 채워주고 음식을 가득 채워준다. 배가 불러서 거절을 해도, 계속 채워준다. 우리 얼굴에 '진짜로 배가 불러서 더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것이 100% 확실히 보여지면 그때서야 그만 권하는 것이다.
        (초펠스님의 아버님과 여동생, 두쌍의 부녀가 함께 찍은 사진.ㅋㅋ^^
      어머님과 남동생은 초펠스님의 형님인 잠링스님이 계신 다람살라에서 사신다)

초펠스님의 아버님집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펠스님 여동생분이 너무나 맛있는 채식음식을 장만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단촐하지만 단아한 집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집안에 있는 불단을 참배하자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와, 정말 맛있는 음식들. 두세번 권할 때마다, 매번 너무 배부르다고 사양해도... 통하질 않았다.

뗀펠 노스님은 끊없이 시자스님에게 음식을 권하라고 시키신다. 우리가 시자스님에게 '정말로 배부르다. 도저히 못먹겠다.'고 하소연을 해도, 시자스님인 뗀진 스님은 웃으면서 자신의 은사스님이 시키는 말에 100%복종을 할 뿐이다. 결국 숨쉬기 곤란한 지경이 되어서야 노스님께서 웃으시면서 그만 권하신다.

규메에서 근처의 세라 사원과 남돌링 사원을 보러 갔을 때는 자주자주 식당에 들러 음료를 사주시곤 하셨다. 우리는 더운 날, 연속적으로 뜨거운 짜이를 마시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번은 망고쥬스를 시켜서 먹었다.

그 날 저녁, 게스트 하우스에서 그 날 탐방한 내용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에서 뭔가 딸그락 소리가 났다. 바람소리라고 생각하고 계속 이야기를 하다가, 그래도 확인하려고 나가보니, 문고리에 '망고쥬스'가 걸려 있었다. 얼른 입구 쪽으로 내다보니, 뗀펠 노스님이 나가시는 모습이 보였다. 스님께서 계시는 곳은 게스트하우스와 거리가 있고, 또 음료를 파는 곳은 스님 숙소보다도 더 먼 거리인데, 시자를 시키지도 않고 당신 혼자서 사와서 몰래 두고 가신 것이었다.

              (노스님의 아침공양시간. 우유에 짜파티를 찍어 드시는 모습)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티벳스님들이 잘 먹고 산다고 오해할까봐, 스님들의 일상을 말해주고 싶다. 티벳사원에는 보통 사원소속의 젖소가 있다. 규메의 경우 하루에 두번 젖을 짜는데, 이 우유를 끓여서 밀가루 빵(짜파티)과 함께 하루 세번 배급을 한다. 배급 종이 울리면, 시자들은 보온통을 들고나와 우유와 짜파티를 받아간다. 이것이 식사의 전부이다.

약간의 과일과 채소들은 개인적으로 구입을 한다. 티벳사원이 인도로 망명온 이후에, 티벳사원내의 음식은 채식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티벳사원은 음식은 양념으로 범벅이 된 우리의 채식식단에 비하면 참으로 간소하고 담백했다.

뗀펠 노스님방에서 노스님과 함께 티벳경전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참으로 자비롭고 마음이 유연하시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시자스님이 바빠서 통역없이 함께 있은 적이 있었다.

그때, 노스님께서는 달력을 들고 오시더니 달력의 숫자를 가르켜가면서 대화를 시작하셨다. 당신의 나이, 당신이 티벳에서 넘어온 나이, 스님이 된 나이등을 달력의 숫자들을 짚어가면서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우리의 나이도 물으셨다. 우리도 달력을 짚어가며, 만국 공통어인 바디 랭귀지를 써가며, 한참을 진지하고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나 기발한 상황인가?

뗀펠 노스님과 우리를 보살펴 주었던 시자스님과 소임자 스님들 덕분에 우리는 규메에서 가슴 한가득 자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규메를 떠나기 하루 전날, 스님께서 티벳승복을 한벌 구해서 입으셨다.
                                규메 스님들이 티벳사람같다고 다들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