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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회향하는 삶

  도량에 있는 폐품을 재활용해서 쌓은 담벽, 플라스틱병, 깡통, 가스통, 병등이 쓰여졌다.
  사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겨울에 거미같은 곤충들이 따뜻하게 보낼 곳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첫번째로 입주한 거미! ㅋㅋ
   지금 홍서원은 무료로 1차 아파트를 분양중이다. ^-----^



산밑에 사니, 가을이 참 짧게 느껴진다. 가을에 들어서기 전부터 겨울준비를 시작했다. 덧창문도 달아보고, 홑벽인 곳에는 벽도 둘러쳐보았다. 사진에서 보이는 담벽은 현현스님 토굴앞에 쌓은 것이다. 온갖 폐품을 버리지 않고 함께 쌓아올렸더니 멋진 작품이 되었다.

한 걸음 물러나서 스님께서 정성껏 쌓으신 담을 보니, 당신께서 살아오신 삶이 마치 이 담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봉 무무 스님께서는 함양에서 태어나셨다. 어릴 때, 하늘을 쳐다보고 우주의 끝을 생각하거나,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면 곧잘 선정에 드시곤 했다. 그러나 세상일을 빨리 마쳐야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계셨다고 한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되어서, 당신께서는 '세상일을 빨리 해마쳐야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셨다. 스님께서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동네 이발소였다. 동네사람들은 잘 나가는 의사집 아들이 이발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참 이해하기 어려워했다고 한다. 그래도 스님은 칼을 갈고, 면도를 하고, 이발을 하는 것을 야무치게 배우셨고, 또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고향을 떠나셨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양복점이었다고 한다. 군산에 있는 양복점에서 일할 때, 스님이 제일 먼저 일어나 가게문을 열고, 가게 앞을 물청소하고, 가게 정리를 끝내고 나서 한 숨을 돌리면, 그때서야 다른 가게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셧터문을 올리려면, 늘 주인이 자고 있는 방 앞을 지나가야 했는데, 스님이 너무 부지런했던 탓에 아침 일찍 문을 열려고 방 앞을 지나가면 주인이 방안에서 '얘야, 아직 어둡다. 좀 더 자다가 나와라.'고 말렸다고 한다.

이렇게 이발소, 양복점으로 시작해서 어렸을 때부터 온갖 세상일을 경험하셨지만, 스님의 특징은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매번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될 때마다, 그 일을 다 배우면 곧바로 미련없이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셨다. 그래서 스님께서 세상에서 배우신 일은 참으로 다채롭다. 이발에서 시작해서 재단과 바느질, 비옷 만드는 고무공장 미싱일, 화훼원일, 버스운전, 택시운전 등등...또 절집에서도 10년 넘게 행자로만 살면서 후원일, 절집살림, 농사, 나무하고 집짓는 일까지 안해본 일이 없으셨으니...

처음 지리산에 와서 1년 정도 스님밑에서 살면서 속으로 놀란 적이 사실, 한 두번이 아니었다. 바느질은 거의 혀를 내두를 수준이시고, 음식도 너무 잘하시고, 뭐 미장부터 목수, 전기, 꽃꽂이까지 못하는 일이 없으셨다. 그러나 스님께서 그렇게 만능으로 뭐든지 척척 해내시는 것이 다 세상을 뼈아프게 살아본 나머지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는... 멋 모르고 부모 밑에서 자라서,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커온 내 자신이 참 부끄럽게 느껴졌다.

스님께서 젊은 나이에 군대에 갔을 때, 군대 사수가 스님의 손을 잡아보더니, 젊은 사람이 무슨 고생을 했길래 손이 이렇게 엉망이냐고 스님 손을 잡고 울었다고 한다.

이렇게 세상을 뼈아프게 살아보셔서인지, 스님께서는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헤아리신다. 그러나 그 마음을 다 헤아리시면서도 꼭 그 사람의 마음에다 불법의 인을 심어주시니, 참으로 거룩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들 머리 깎아주고, 옷 만들어주고, 또 비옷만들어 주고, 버스로 실어날라주고... 그래도 내가 세상에서 한 일은 다 사람들을 이익되게 한 일인 것 같다."

자신이 쌓은 선근공덕을 돌려서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이 회향이라면...
당신께서 세상을 살아보신 만큼, 그 회향은 더욱 크고 값지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서른에 하루에 1시간정도 밖에 못 주무시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행했던 당신의 삶을...정말... 발끝만이라도 닮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