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야기/정진 | Posted by 보리심 승가 홍서원 보리심의 새싹 2006.09.19 09:24

절집에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이유

< 우리는 동국대 해외탐방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인도 속의 티벳사원들을 방문했었다. 위 사진은 그곳에서 만난 스님 도반과 함께 노블링카에서 찍은 것이다. 검은 코끼리는 혼침을, 흰 코끼리는 경안을 의미하며, 우리가 수행해 나가는 과정을 나타낸 그림이다.>


절집에는 "새벽 예불 한번 빠지면 소 한마리 잃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새벽 예불이 우리 수행에서 참으로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보통 전통적인 사찰에서는 저녁 9시에 취침해서 새벽 3시면 기상한다.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해질무렵에 한 시간가량 재가신도를 위해 설법하시고, 오후 6시~10시사이에는 비구스님들을 위해 설법하시고, 10시~2시 사이에는 육체적으로는 쉬시면서 천상의 신들을 위해 법문하셨으며, 2시에는 잠시 경행을 하시고 다시 3시부터 한시간 가량 취침을 하셨다고 한다. 아마 4시쯤으로 기상시간을 정하신 것은 일반 대중들이 일어나는 시간에 맞추기 위한 자비심의 발현이었다고 생각된다.
남방불교권에서는 보통 해뜨는 시간 4시~5시에 기상하고, 이는 티벳불교도 마찬가지이다.(물론 특별기도기간에는 새벽 2시 30분에 기상하기도 한다)

세계불교계에서 한국불교가 아마 제일 이른 시간에 일어날 것이다. 극소수의 선원은 1시 30분에 기상하기도 하고, 여기 우리가 사는 지리산은 2시 30분에 기상을 하니... 요즘같이 대다수가 올빼미족인 현대인들에게는 납득이 잘 가지 않는 일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수행의 핵심이 바로 "음욕심을 자비심으로 전환하는 것"임을 이해한다면, 이같이 새벽에 일어나서 초롱초롱 깨어있는 습관이 얼마나 우리 수행에 도움이 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인시(3시~5시)에 일어나면 몸의 양기를 극대화하여 쉽게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하였고, 예로부터 영물들은 인시의 생기를 이용할 줄 알았다고 하는 말도 있다.

이를 수행적으로 해석하면, 잠이라는 무의식 상태에서 빠진 우리의 의식을, 우주의 기운을 이용하여 자각력을 일깨우기 위해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뿌리는 음욕심에 기반한다. 스스로가 제어할 수 있는 낮동안에는 의식적으로 수행을 할 수 있더라도, 잠이라는 무의식에서는 그 수행이 지속되기가 참 힘들다. 그래서 옛부터 수행자는 오래 잠을 청하지 않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각성상태를 의식적으로 유지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새벽에 새벽별처럼 초롱초롱 깨어있는 것. 이것은 수행자가 스스로의 수행이 얼마나 진척되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참으로 귀중한 기준이 된다. 불교에는 "경안"이라는 것이 있다.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의식이 깨어나면 날수록, 음욕심이 자비심으로 전환되면 될수록, 우리의 몸과 마음은 무겁고 가라앉는 것에서 점차 경안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겁고 가라앉는 마음 즉 "혼침"은 몸과 물질에 종속된 마음이다. 수만생을 거듭해오면서 음욕심으로 또 다시 태어나고 죽는 일을 반복해 오는 동안, 우리는 경안보다는 혼침에 익숙해져 있다. 수천년을 흘러온 물줄기의 방향을 트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큰 신심과 강한 의지력은 반드시 그 물줄기를 틀어, 물이 산으로 올라가는 소식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공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빛과 함께 휴식하네.
지복의 경지에서 각성과 함께 휴식하네.
무념의 경지에서 벌거벗은 마음으로 휴식하네.
갖가지 나툼과 활동의 경지에서 삼매에 머물며 휴식하네.

마음의 본질을 이같이 명상하여,
무수한 지견과 확신을 얻었네.
더 이상 깨달음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의 빛으로
모든 것을 노력없이 얻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바램도 두려움도 없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가?
오, 얼마나 큰 기쁨인가?
대지혜가 출현할 때의 황홀함이여,
마하무드라를 행할 때에
나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기운을 흩뜨리지도 않고,
본래의 상태에서 편안히 쉬네."  

-밀라래빠의 십만송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