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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이야기 /2014년

수행의 최종목적

주숙미(周淑美)보살님은 호스피스 전문가이다.

스스로도 임종환자들을 많이 돌봤고, 호스피스를 교육하는 일도 하고 있었다.

숙미 보살님은 이미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자비행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계신 상태였고,

얼마전에는 태국으로 단기 출가를 다녀올 만큼 수행에도 적극적인 분이었다.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언제나 당당한...그럴정도로 잘 살아왔던 보살님이었기에...

잘 살아온 만큼,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미묘한 에고를 가진 상태였다.

보살님은 스님께 질문 드릴 것이 없지만, 그저 가까이서 뵙고 차 한잔 하고 싶어 왔다고 했다.

스님께선 첫 눈에 바로 보살님을  파악하시고는,

어떤 가르침도 주시지 않고 마당에 있는 정자에 앉아, 

보살님이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를 편안하게 쭉 들어주셨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이야기가 무르익고, 스님께서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에고를 슬쩍 건드려주시자...

갑자기 보살님께서 질문이 생겼다고 하셨다.

스님께선, 늘상 법문을 하시는 거실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공양간으로 들어가자고 하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보살님의 마음 속에 배우는 사람으로서 만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에,

스님께서 일부러 입장을 낮추시고, 같이 편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 속에 법문을 해주시기 위함이었다.

 

보살님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스님께선 다음 생에 다시 오시나요? 스님 수행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요?"

 

 

 

 

 

 

스님께선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다.

 

"보살님께서 제 수행의 최종 목적을 물어보셨는데,

내가 가는 곳은 부처님이 가신 곳과 같아요.

보살님은 부처님 가신 곳을 압니까?

지금 우리가 수행의 목적이 부처님의 최종 목적과 같아야 하는데,

만약 부처님의 최종 목적을 모른다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사실, 보살님이 만약 부처님의 최종 목적을 알고 있었다면, 나에게 그런 질문을 안하게 되어있어요...

스스로가 몰랐기 때문에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한거죠.

비록 보살님이 부처님 가르침따라 잘 실천하고 있지만, 종착점을 모르는 거예요.

내가 보살님을 지금까지 잘 살았다고 칭찬했는데...

종착점을 몰라도, 수행을 잘 했기 때문에 칭찬했어요.

 

그런데, 다음 생에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가는 곳도 모르고,

종착점도 모르고, 

다음 생을 기다리잖아요...

 

깨달은 사람은 삼계를 벗어난 사람이예요.

아라한과를 얻으면 영원히 삼계에 다시 안와요.

탐진치 삼독심과 오욕락을 영원히 벗어나는 거예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다시는 이 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시는 이런 집을 짓지않겠다.'

'다시는 태어나는 일이 없다.'

 

그렇다면 다시는 이 몸을 필요로 하지 않고, 태어나는 일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보살님께서 대답하셨다.

 

"뭘 해도 상관없는 존재?

 머무르는 바 없는 존재?

 허공에 편재하는 존재?"

 

스님께서 다시 법문을 이으셨다.

 

"허공에 편재하면 그건 바로 허공이죠. 허공이 깨달은 존재인가요? 허공이 붓다가 될 수는 없죠."

 

그리고 종이에 "무량수, 무량광. 1,2,3,4,5,6......"이라고 적어보라 하셨다.

 

스님께서 물어보셨다.

 

"저 수많은 세계에서 어디가 종착점일까요?

매일매일 찰나 찰나가 단 한번도 똑같은 것이 없습니다.

윤회세계는 매일 매일이 되풀이 되는 세계입니다.

번뇌망상과 집착으로 되풀이 되는 세계입니다.

무량수 무량광은 집착할 것이 없는 세계, 끝없이 새로운 세계, 새로운 것이 끝없이 이어지는 세계입니다.

윤회세계는 무량광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가신 곳은,

부처님의 종착점은,

바로 무상정등정각입니다.

그럼 무상정등정각이 끝이 있을까요?

 

아까 보살님께서 '부처님은 여기에 계신다'고 하셨는데,

과연 부처님은 중생세계에 계실까요?

부처님은 여기에 안 계세요.

우리가 말하는 여기는 탐진치 번뇌망상의 미혹의 세계입니다.

여기 이 세계에는 부처님이 절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럼 부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효혜가 대답했다.

"극락세계?"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당장에 죽비가 날아갔다.

스님께서는 효혜에게 "효혜가 대답을 못하는 것은 아침 예불을 지극히 안봐서 그래."라고 하시며 핀잔을 주셨다.

 

그러자 보살님이 대답을 했다.

"깨달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나요?"

 

스님께선 보살님도 죽비로 한방 경책하시고, 이렇게 법문을 해주셨다.

 

"부처님 가르침은 정확히 알아야, 다시는 미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효혜에게 계를 잘 지키고, 일일기도문 하고, 바르게 살라고 하는 거예요.

꾸준히 해서 자리가 잡혀가면 어느새 깨달음을 얻게 되요.

 

부처님은 여기에는 절대 안계십니다.

아라한과를 얻은 사람은 절대 여기에 없어요.

그렇다면 대답 한 번 해보세요.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하나요, 존재하지 않나요?

 

불교 가르침에 찰나생 찰나멸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 말은 탐진치 번뇌망상이 있으면 찰나생이고, 삼독심이 사라지면 찰나멸이예요.

삼독심 오욕락이 멸한 곳이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

부처님이 계신 곳은 상자적멸상...

육도 윤회세계에는 안계세요.

 

부처님의 종착점은 바로 무상정등정각.

그러나 그 자리는 끝이 있는 자리가 아니예요. 영원한 자리예요.

영원히 산다느니 영원히 행복하다느니 그런 생각으로 가지말고, 무상정등정각으로 가세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그 보리심을 발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그곳에 계세요. 윤회세계에서는 부처님을 찾을 길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선지식을 친견하고 받들고 가르침을 들어야 합니다.

선지식과의 인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인연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수많은 선지식들이 가족으로 오기도 하고, 친구로 오기도 하고, 원수로 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런 선지식을 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일기도문! 간절하게! 그래야 선지식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스님의 간절하신 법문 끝에, 보살님은 일일기도문을 열심히 배워가셨고,

법회기간 동안, 친구들과 함께 와서 유기농 빵과 만두를 공양 올리고 법문을 듣고 가시곤 했다.

숙미 보살님 이후로도, 열심히 수행도 하고 자비 실천행을 하면서도,

마음 속에 무상정등정각의 인이 심어지지 않은 분들을 위해...

스님께선 끊임없이 삼귀의와 발보리심의 인을 심어주셨다.

 

     <일일기도문이 적힌 명함을 열심히 보고 있는 숙미 보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