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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이야기 /2014년

무량한 마음이 바로 내 마음

 

                                                       <미수보살님과 법문해주시는 스님>

 

                                                           <통역해준 채식식당 처사님>

 

 

바이오@피스까페 채식식당 주인 처사님이 울라이 숙소까지 태워주신 날,

둘째 효정과 함께 찻집에서 근무하는 미수(美穗) 보살님이 오셨다.

미수 보살님은 스님을 뵙자, 자신의 문제를 말씀드리면서 울먹이셨다.

 

"예전에는 아무 문제없이 가족이 하자는 대로, 동료들이 하자는 대로 다 했었는데,

이제는 속에서 모든 것이 다 부딪힙니다.

속에서 갈등이 심해질 때마다, 그러는 제 자신이 싫은데...

예전에 배웠던 부처님 가르침을 떠올려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스님께선 이렇게 법문을 시작하셨다.

 

"내가 환영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꿈 속의 일은 아닌지...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진짜인지...

 자기 자신이 누군인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보살님께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물으셨다.

보살님은 조금 생각하시더니, "믿음과 사랑이요..."라고 대답하셨다.

 

스님께선 그 대답을 들으시고 계속 법문을 이어가셨다.


"보살님께서 나는 믿음이다. 나는 사랑이다라고 말을 했지만,

사실은 보살님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사대로 된 몸입니다. 물질적인 집착이죠...

보통 '나'를 구성하는 요소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인데,

믿음과 사랑은 공 속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믿음과 사랑이 자기 자신이라면 부딪힐 일이 없습니다.

공이기 때문에 부딪히지 않는거죠.

사랑이 부딪히는 일 봤나요?

믿음이 부딪히는 일 봤나요?

거짓된 자아의식이 부딪히는 겁니다.

사랑과 믿음 속엔 부딪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자아의식이... 결국 무아입니다.

하지만 무지무명때문에 이것이 있다고 집착하는 거죠.

우리는 무지무명 때문에 고통받고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이 몸을 만들은 자가 미혹에서 깨어나면 다시는 생사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삼독심의 집착 때문에 고통의 세계에 태어납니다.

지금 보살님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보살님이 정말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시는데...

그렇다면, 현재의 이 몸에 대한 집착을 당장에 버릴 수 있겠습니까?

어렵죠...

버리기 어렵기 때문에 이 고통의 세계에 계속 태어나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태어남의 집착을 끝내야, 영원히 고통을 멸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다음 하신 말씀이 있으신데, 잘 사유해보세요.

 

"다시는 나는 이 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시는 나는 이와 같은 집을 짓지 않겠다.

다시는 나는 태어나는 일이 없다."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보살님도 이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대오온을 갖고 쓰되, 절대로 속지마세요.

오직 허공(반야의 지혜)이 하는 것입니다.

맞아도 허공이 맞고, 누가 비난해도 허공이 비난받는 것입니다.

텅텅 비어서 걸림없는 허공에 대한 자각. 스스로의 비어있음에 대한 자각이 필요합니다.

비어있는 공의 성품이 바로 보살님입니다. 물질은 환영입니다.

보살님의 지금까지의 삶은...꿈을 꾸고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시고 이 모든 것이 다 환영인줄 아셨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 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다시는 태어나는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시는 거짓된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불가사의! 사량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형상을 가지게 된 것은, 비어있음의 공의 성품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모두 미혹 때문입니다.

미혹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공성의 자각을 갖추면 이 몸을 갖고 살되, 문제가 없어집니다.

허공이 부숴지는 것을 봤습니까?

허공이 성질내는 것을 봤습니까?

허공이 고통받는 것을 봤습니까?

허공 속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허공이 관여하는 것 봤습니까?

허공 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가 자기 자신의 성품입니다.

그 위대한 마음이 바로 붓다의 마음입니다."

 

스님의 법문 끝에 보살님의 얼굴이 밝아지니, 스님께서 재차 물으셨다.

 

"이제 마음이 좀 넓어지셨습니까?

 올 때는 마음이 조그만했는데, 이제는 좀 커졌습니까?

보살님 마음을 어느 정도까지 넓힐 수 있겠습니까?

마음은 한계가 없습니다.

무량심!

무량한 마음을 못 쓰는 사람이 중생입니다.

무량한 마음을 쓰면 붓다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통이 보살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고, 그래서 여기에 왔습니다.

고통의 마음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통의 마음이 어느 정도 있습니까?

고통 아닌 마음을 얼마나 넓힐 수 있겠습니까?

한 시간안에 넓히고 줄이고 마음대로 했잖아요. 남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그렇게 했잖아요.

행복한 마음을 얼마만큼 넓힐 수 있겠습니까?

무량수! 무량광! 나무아미타불!

영원한 수명, 영원한 행복, 영원한 자유!

이 모든 것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보살님 마음 안에 있습니다.

보살님은 무량하게 살고 싶습니까, 좁쌀처럼 살고 싶습니까?

그 선택은 보살님이 하실 수 있습니다.

지혜롭게 사는 자, 행복과 지혜가 자꾸 밝아집니다.

무량한 마음은 멸하지 않고, 영원히 갑니다.

그래서 불생불멸입니다.

그 마음 갖고 사세요. 꼭 놓치지 마세요!

마음 잘 다스리세요.

광대무변한 마음! 무량수! 무량광! 나무아미타불!"

 

스님의 간절하신 법문 끝에 보살님의 고통스러운 마음은 한층 밝아졌다.

이렇게 스님께선 경전 속에 있어 멀리만 느껴지는 공성의 지혜를, 

일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알기 쉽게 법문을 해주셨다.

그리고 그 법문을 듣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근기따라, 선근자량따라,

"자유와 행복"을 얻어감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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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utu.be/hCJRfQAfTs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