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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이야기/홍서원 공양간 이야기

열려있는 참된 깨달음5

 

 

공양주는 도인이 해야 한다

 

요즘 스님들이 강원이나 선방을 다니게 되면, 오히려 일반사람들 보다 인스턴트 식품들에 쉽게 노출이 된다. 수행과 음식에 대해 세심한 자각력을 갖추지 못한 불자들이, 스님들을 생각해서 공양 올리는 품목들이, 주로 빵, 피자, 치즈, 요플레, 두유, 아이스크림, 과자, 견과류, 수입과일 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원이나 선방의 지대방에 가면, 이런 종류의 음식들이 늘 놓여있어, 대부분의 스님들은 점차로 인스턴트에 길들여지고 중독이 되어버린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불자님들 스스로가 음식에 대한 바른 견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신채와 모든 육식을 배제한 전통적인 절집 음식들이 수행에 가장 도움이 되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풀만 먹고 사는 스님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갖가지 간식거리와 심지어 곰탕이나 전복, 고기까지도 공양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양물들은 스님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수행자의 의식을 한없이 떨어지게 만든다는 것을 꼭 깊이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스님들 스스로에게 있다. 대승 불교권은 남방 불교권과는 달리 스님들이 스스로 농사도 짓고, 공양도 직접 만들어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공양간을 속인에게 내주는 풍토는 유독 한국불교가 심하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비구스님일지라도 대중에서 소임을 맡아 스스로 공양을 짓고 살았는데, 요즘에는 공양주 보살님 없이 비구 스님들 스스로 공양을 해결하는 경우가 참 드물다.

 

만일, 공양주 보살님들의 마음이 순수하고 진실되지 못하다면, 비구스님들과 공양주 보살님과의 공생관계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어느새 절집 공양주 소임이 수행의 한 부분이 되지 못하고 직업적인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공양주를 맡은 보살님 스스로가 오신채와 고기를 확실히 끊은 경우가 드물고, 스님들 또한 음식을 청정하게 먹으려는 의지가 박약하기 때문에 서로간의 속고 속이는 관계 속에서 수많은 악업들이 벌어지게 된다.

 

스님들은 스님들대로 인스턴트와 오신채, 육식에 맛을 들여 자꾸 절집 음식이 맛없다 하니, 공양주 보살님들은 오신채를 쓰지 않더라도 설탕이나 진간장, 화학조미료 등으로 더욱 자극적인 맛을 내게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러면 그렇지하는 마음으로 몰래 양파를 갈아 넣고 육수를 넣고는, 맛있다고 잘 먹는 스님들을 보면서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다.

 

밀교의 가르침에 보면, ‘계율을 파하거나 악업을 지은 사람들과 음식을 함께 나누거나, 도덕적인 문제나 악업을 통해 얻어진 음식을 먹으면 수행에 장애가 오니, 수행 중에는 꼭 외부 음식을 삼가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모든 음식에는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사념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에는 도인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하지만, 정작 그 이유가 바로 음식이라는 아주 단순하고 가까운데 있다는 것을 눈치 채는 사람은 드물다. 아무리 선방에서 몇 안거를 성만하고, 용맹 정진을 하더라도, 수행자의 마음속에 속가 음식에 대한 탐심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공양을 짓는 사람들의 마음이 진실되고 청정하지 않는 이상, 그 수행은 성취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스님께서 늘, “공양주는 도인이 해야 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문관에 있으면서 더욱 세심히 살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 공양주 소임을 맡은 현현스님의 그 날 신심에 따라 음식 맛이 미묘하게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현현스님이 아무리 음식을 잘해도, 스님께서는 경책을 하시며 오늘 공양 지으면서 무슨 사념을 일으켰어?”라고 물어보시는 경우도 있으셨고, 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음식인데도 맛있게 드시면서, “오늘은 공양 지으면서 무슨 좋은 생각을 했나?”라고 칭찬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으셨다. 스님 앞에서는 털끝만한 것도 숨길 수 없는 상황이니, 공양을 짓는 현현스님의 마음은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세밀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수행자 스스로가 자각력이 떨어져서 알지 못할 뿐이지, 공양을 짓는 사람들이, 불법에 귀의하고, 청정히 계율을 지키려하고, 함께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수행자가 아무리 잘 하려 해도 의식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정말로 진실되게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공양 또한 청정하고 간절한 마음이 담긴 공양이어야 한다. 공부가 더욱 정밀해지고 세밀해질수록, 공양하는 음식 또한 더욱 청정하고 진실된 음식이어야 장애를 덜 받고 공부를 지어갈 수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번거로움을 피해 공부에만 전념하고 싶어 대중선방에서 공부하다가, 오히려 대중의 업보로 함께 의식이 떨어지게 된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런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지혜롭게 공부를 지어갈 수 있는 길은, 결국 마음을 바르게 쓰고, 계율을 청정히 지키며, 예불을 지극히 드리는 데에 달려있다. 더욱이 예불의식은 깨달은 분들이 귀의와 찬탄, 참회, 원력의 마음으로 장엄한 것이기 때문에, 계율을 잘 지키고, 예불을 지극히 드리면 수많은 장애들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고, 또 이미 받은 장애들도 소멸될 수 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첫 단추를 바르게 잘 잠그지 못하면, 나중 일을 아무리 잘 한다 해도 어긋나 버리게 된다. 세상일도 그러한데, 도를 깨쳐 생사를 요달하고자 하는 이 공부는, 처음 발심할 때의 그 마음이 정말로 순수하고, 바르고, 자비로워야 한다. 발심이 진실 되면,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자 하는 마음,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자 하는 마음, 진실된 보리심으로, 어려움 없이 이 공부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

 

비록 당장에 모든 것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할지라도,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무지와 삼독심으로 잘못 들인 습관들을 하나하나 바르게 전환하여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을 제거하고, 계율을 청정히 지켜 살생과 음욕의 마음을 끊으며, 자신의 악한 습관들을 자각해 고쳐나가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께서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신 깨달음을 향한 첫 걸음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위없는 보리를 연마하여 참으로 성품을 깨닫고자 한다면, 응당 정직한 마음으로 해야 된다. 시방의 여래께서는 모두 동일(同一)한 도()로 생사를 벗어나셨으니 이는 다 정직한 마음(直心)때문이었느니라. 마음과 말이 정직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처음과 끝의 지위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모든 굴곡과 어려움이 영원히 없었느니라.……” -<능엄경>중에서-

 

열려있는 참된 깨달음의 첫 번째 이야기를 마치며,

끝으로 홍서원 스님들이 매일 간절히 새기는, ‘과거 모든 지혜로우신 스승님들의 충고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과거 모든 지혜로우신 스승님들의 충고 말씀>

 

1. 공부하거나 사유할 필요가 없다하여 생각을 끄고 공성에 안주하는 수행자는, 이미 낮은 지혜를 더욱더 떨어뜨리고, 이미 치성해진 무지를 더욱 증장시킨다.

 

2. 불법이 일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미약해진 정진은 더욱더 감소되고, 이미 치성한 게으름을 더욱 더한다.

 

3. 인과가 본래 없다고 생각하여 겁 없이 수행한다면, 이미 작아진 선()은 더욱 미약하게 되고, 이미 치성해진 어리석은 소견은 더욱 강화된다.

 

4. 선도 악도 없다고 생각하여 어리석게 수행한다면, 그나마 있는 작은 헌신도, 자비심도 없어지고, 이미 치성해진 자만심과 아만심만 부풀린다.

 

5. 태어남도 죽음도 없다고 생각하여 바보같이 수행한다면, 이미 약해진 신심은 훼손되고, 이미 많아진 삿된 소견은 더욱 늘어난다.

 

6. 윤회와 열반이 없다고 생각하여 겁 없이 수행한다면, 이미 미약해진 ()를 얻으려는 관심은 고갈되고, 이미 내재된 강력한 세속팔풍은 더욱 강하게 된다.

 

이와 같이 어리석게 자만을 가지고 수행하는 자는, 이익보다는 더욱 잘못된 견해에 빠져든다. 부디 잘 새겨서 겸양과 겸손의 덕을 갖추고 자만하지 말기를. 아무리 둘러봐도 이 세상에는 지혜를 가지고 바르게 수행하는 자는 없는 듯하다.

 

생사를 요달하여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얻고자 하는 수행자께서는 이와 같은 간절한 스승님들의 충고를 잘 새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