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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개미 모기와 함께 중답게 삽니다.(경향신문)

“개미·모기와 함께 ‘중답게’ 삽니다”

 경남 하동 | 글·사진 김종목기자 jomo@kyunghyang.com

‘…못 말리는 수행이야기’ 펴낸 천진·현현스님


지난 5일 오후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맥전마을. 지리산 자락을 따라 화개마을에서 6㎞, 쌍계사에서는 1㎞가량 떨어진 이 골짜기에 나무와 벽돌 폐자재, 폐품 스티로폼 등으로 얼기설기 엮은 토굴 4채가 모여 있다. 수행 도량 홍서원(弘誓院)이다. 중생을 위한 큰 수행 공간이란 뜻인데, 그 이름은 오간 데 없이 토굴로 올라가는 돌계단 끄트머리에 목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中答偈殺者’. 한참을 들여다보며 한자 뜻을 헤아리자 안내한 스님이 웃으며 말한다. “‘중답게살자’잖아요.

천진 스님(34)이다. 스님은 이번에 지리산 자락 토굴에서 7년간 수행하며 얻은 깨달음과 법문을 <지리산 스님들의 못 말리는 수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중답게 사는’ 이야기다. 스님은 고려대 인문대 재학 시절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과 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열성적이었지만 남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이분법은 참여로써 해결되지 않았다. 하고 싶었던 미술 공부를 위해 다시 수능 시험을 보고 홍익대 미대에 입학하던 그해 봄 우연히 해남 대흥사를 들렀다. “참선을 하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해방감,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세상에 아파하고 불만을 가졌던 게 내 마음속 일이란 걸, 세상 모순을 해결하고 사람들의 행복의 길로 이끌 수 있는 건 바로 출가에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000년 수덕사 견성암으로 출가했다.

지난 5일 도반인 현현 스님(사진 왼쪽)과 천진 스님이 지리산 홍서원 텃밭에 앉아 수행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두 스님은 2000년 수덕사 견성암으로 출가후 10년째 도반의 연을 이어오고 있다.


천진 스님은 견성암에서 도반(道伴·함께 도를 닦는 벗) 현현 스님을 만났다. 현현 스님(32)은 천진 스님이 ‘보리심의 새싹(http://borisim.net)’ 블로그에 오른 글들을 엮어 책의 기본틀을 잡았다. 부산대 음대를 다니며 피아노 레슨으로 돈을 벌고 놀기도 많이 놀았다고 한다.

졸업하던 해 승용차도 신청했다. 대리점에서 차를 받기로 한 날. “이제 선도 보고 결혼해서 멀쩡하고 평범하게 사는 삶이 눈 앞에 펼쳐졌는데 문득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초등학교 때 속가의 아버지 정봉 스님이 내 머리맡에서 하던 참선 모습과 알 듯 모를 듯 전해주던 부처님 말씀이 어렴풋이 떠올라 출가를 결심했지요.”

2000년 출가한 현현 스님은 2년 동안 견성암에서 지낸 뒤 정봉 스님과 편지로 선문답과 법문을 주고받다 직접 가르침을 받기로 결심한다. 부녀라는 속가의 인연이 진리의 인연으로 승화되며 이어졌다. 도반 천진 스님도 길을 함께했다. 정봉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지리산 토굴에서 ‘못말리는 수행’이 시작됐다.

점심 공양 뒤 진행한 인터뷰에서 ‘못말리는 수행’이란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고 하자 현현 스님은 “기자님도 낚이셨군요”라며 웃는다.

정봉 스님이 보탠다. “좋다는 대학 나와서 쟁쟁한 일을 할 수 있는데 아무도 출가를 못 말렸죠. 생사고해를 벗어나 영원히 자유인이 되는, 해탈의 길, 위대한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못말린 겁니다.”

‘중답게’ 사는 건 무엇일까. 천진·현현 스님은 △ 모기·파리·개미 한 마리 죽이지 말 것 △ 시계 없이 새벽 2시30분에 일어날 것 △ 부처님의 바른 법과 중생들을 향한 마음 외에 세속적 마음을 내지 말 것 등 가르침을 받아 7년 동안 어김없이 따르고 있다. 새벽 2시30분 예불·기도를 시작해 108대참회기도, 공양, 자율정진, 법문 등의 일과가 이어진다. 한치의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는 혹독한 가르침 때문에 현현 스님은 한때 이곳을 떠나려 화개터미널까지 갔지만 세속적 정을 허용하지 않는 정봉·천진 스님의 무반응에 오기가 발동해 되돌아온 적도 있다.

‘살생’에 관한 계율은 엄격하다. 채소 텃밭은 최소한만 두고 있다. 밭을 많이 일구면 그만큼 벌레들이 죽기 때문이다. 쑥·냉이·구절초·쑥부쟁이·고들빼기 씨를 번지게 해 자연이 주는 대로 먹는다. 길 위의 개미 한 마리도 조심한다.

정봉 스님은 “살생하려는 마음, 원망·원한의 마음이 사라지면 길을 힘으로 가더라도 잘 안 죽이게 된다”며 “우리의 마음 상태가 악의 일거리 또 선의 일거리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출가 9년. 수행이란 무엇인가. 천진 스님의 답이다. “불도의 깨달음으로 널리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 보리심을 일으키는 수행자로선 가장 중요합니다. 나고 죽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르침을 준 게 부처님이고 그 가르침을 따라가는 게 수행입니다. 어려울 건 없습니다.”

정봉·천진·현현 스님은 이달 중순 인도로 떠난다. 선지식을 찾기 위한 구도의 길이다. 정봉 스님이 웃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별 거 아니면 금방 돌아올 겁니다.”

<경남 하동 | 글·사진 김종목기자 jomo@kyunghyang.com>